멧돼지는 육중한 몸을 가졌음에도 그 어떤 동물보다 빠르고 저돌적이며 힘이 센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豕는 사납고 힘이 넘치는 남성미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는데, 豪(호걸 호)는 高(높을 고)의 생략된 모습과 豕로 구성되어 멧돼지(豕) 등에 난 높고(高) 센 털에서 그 이미지를 가져왔다. 이런 야생 돼지는 수렵의 주된 대상이었기에 逐(쫓을 축)은 멧돼지(豕)를 쫓아가는(착·착) 모습을, (희,선)(들불 선)은 들에 불(火·화)을 놓아 돼지(豕)를 몰아 잡는 사냥법을 그렸다.
또 X(서로 잡고 어울려 싸울 거)는 호랑이(호·호, 虎의 생략된 모습)와 멧돼지(豕)가 서로 붙어 싸우는 모습을 그렸다. 그 싸움이 얼마나 극렬했던지 X에 力(힘 력)을 더한 *(심할 극·劇의 원래 글자)이 만들어졌고, 이후 力 대신 刀(칼 도)를 써 싸움의 극렬함을 더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야생 돼지의 포획은 그리 쉬운 일도, 항시 확보 가능한 것도 아니어서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집에서 기르기 시작했는데, 중국에서 돼지의 가축화는 대단히 일찍 이루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 얽힌 돼지걸음 축)은 돼지(豕)에서 생식기가 거세된 모습을 그려 전문적인 사육이 상나라 때 이미 이루어졌음을 보여 주며, 환(기를 환)은 두 손으로 돼지를 잡고 ‘돌보며 키우는’ 모습이다. 또 혼(뒷간 혼)은 원래 (혼,환)으로 썼는데, 돼지(豕)가 우리(국·국) 속에 갇힌 모습이며, 돼지우리는 항상 배설물 등으로 축축하기에 水(물 수)를 더해 의미를 강화했다.
하지만 象(코끼리 상)은 원래 코끼리를 그렸으나, 거대한 몸집을 가진 코끼리와 멧돼지가 연계되어 豕부수에 통합되었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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