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자리 한 줄의 내 좌우는 일곱 명 모두 젊은 미녀들이다. 나는 화려한 낙원에 미입(迷入)한 다른 세계, 아니 다른 세기의 촌로(村老) 같은 외로움을 느낀다.
무대에서 보여 주는 것은 뉴욕 브로드웨이 그대로의 ‘아이다’. 뮤지컬이 갖는 음악과 드라마 전달의 직접성. 그 효율성을 시위라도 하듯 뮤직 넘버가 끝나기가 무섭게 터져 나오는 박수갈채의 소용돌이.
이국정취가 물씬 풍기는 고대적, 아프리카적, 게다가 중동적 채색과 음색과 춤이 어우러지는 호화찬란한 무대는 컴퓨터로 조작되는 정확한 조명의 변전 진행 속에 잠시의 지루함조차 주지 않는 눈요깃거리를 우선 선사해 준다.
엘튼 존의 음악, 로버트 풀즈의 연출, 웨인 실렌토의 안무, 특히 밥 크로올리의 무대 및 의상 디자인과 함께 나타샤 카츠의 조명 디자인, 그리고 그들에 못지않게 데이비드 브라운의 헤어 디자인까지 ‘아이다’ 무대를 꾸며낸 스태프는 그야말로 제1급 멤버의 향연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캐스팅은? 그게 놀랍게도 완전 국산이다! 내 옆에서 박수를 치고 있는 젊은 관객들은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한국 뮤지컬의 역사를 좀 보아온 나에게는 그게 조금도 당연하지가 않다.
지금부터 40년 전의 일이다. 우리나라 뮤지컬의 첫 시도라 일컫던 ‘살짜기 옵서예’의 리허설 광경을 우연히 몇 번 구경했던 나는 한국 뮤지컬의 가능성에 대해선 일찌감치 희망을 접어두고 있었다. 미국의 대통령 되기와 뮤지컬 공연은 ‘몸짱’ 아닌 ‘뚱보’ 가지고는 안 된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이 한국 젊은이들의 신체에 소리 없는 혁명이 일어났다. 그래서 이젠 ‘코러스 라인’에 ‘라인 업’ 할 수 있는 한국의 ‘몸짱’들이 양산되고 있는 오늘이 되었다. 게다가 춤들은 왜 그리 기차게도 잘 추어대는지….
‘아이다’를 보며 나는 한국 뮤지컬의 밝은 미래를 본다. 그뿐만 아니라 20세기 중반 이후, 구체적으로는 자코모 푸치니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이후 대중을 수용하고 대중이 수용할 수 있는 어떤 작품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오페라, 그래서 이미 1960년대에 피에르 블레즈가 “모든 오페라 극장을 폭파했으면 싶다”는 폭언을 퍼부었던 오페라를 대신해서 21세기는 ‘뮤지컬의 세기’가 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해 본다.
프랑스의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떠올랐고 국산인 브로드웨이 뮤지컬 ‘아이다’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굳혀졌다.
최정호 객원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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