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21세기 新고전 50권]<32>코스모스

  • 입력 2005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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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가 자아(自我)를 가지는 순간은 어느 때일까, 아마도 아이가 엄마와 눈을 맞추며 심각하게 ‘엄마, 난 어디서 왔어?’를 묻는 순간이 아닐까. 매일 매일 세상이 즐겁고 신기하기만 하던 아이는 어느 순간, 자신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어느 날인가, 아이는 엄마가 동생이라고 말하는 갓난아기와 마주친다. 시간이 지나면서 갓난아기는 조금씩 자라나고, 아이는 자신 역시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면서 자신도 동생처럼 어린 아기에서 조금씩 변해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물은 자라고 있으며 그 변화되는 과정을 거꾸로 되짚어 가다 보면 원래 처음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논리적 공식을 깨달은 아이는 엄마에게 묻는다, 나는 어디서 왔느냐고. 그리고 그 순간 아이의 사고 폭은 빅뱅을 거쳐 독립된 인격체로 성큼 자라날 것이다.

인류 문명과 지혜의 깨달음도 바로 이 시점에서 생각되지 않았을까.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나 인류탄생설화는 존재한다. 때로는 진흙에서, 때로는 나무에서, 때로는 돌멩이에서 생겨나는 등의 차이는 있지만, 아무리 작은 부족이나 촌락에도 저마다 기원이 되는 뿌리가 있다. 이는 인류에게 먹고 자고 섹스하는 수준의 생물학적 본능을 넘어서, 자신의 유래를 거슬러 조상의 시원(始原)을 찾기 위한 고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가짐으로써 인간의 정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것에 확신을 가지면서 말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인류의 기원, 생물의 기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구와 우주의 최초 시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오래전, 우리의 조상들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그들은 전지전능한 존재인 신의 말씀으로 과거를 믿었으며, 밤하늘의 별을 읽고 점성술로 미래를 예언하며 복잡한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을 찾으려 했다. 아직도 하늘을 읽고 인간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 방법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현대인들은 ‘과학’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통해 우주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과학책은 사실에 치우쳐 딱딱하고 어려운 것이기 쉽다. 그렇다고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와 은유를 지나치게 사용하다 보면 과학의 본질에서 멀어지기 십상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면서도 내용이 알찬 책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영문판으로만 600만 부가 넘게 팔리는 메가 히트를 기록하며, 21세기 신고전으로 꼽히게 된 이유일 것이다.

세이건은 복잡하고 골치 아플 것 같기만 했던 우주의 시작과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그 옛날 모닥불 곁에 둘러앉아 현명한 노인이 어린 소년들에게 신과 거인과 요정이 지배하던 신비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으로 이야기한다.

인터넷과 TV가 쏟아내는 정크푸드에 질린 현대인의 뇌를, ‘코스모스’의 나직한 어조와 사진들은 정성들여 끓인 진한 죽처럼 풍부하게 감싸준다. 그리고 덤으로 ‘코스모스’는 당신이 ‘창백한 푸른 별’에 홀로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마음의 위안까지 안겨 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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