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한가위]결혼 안한 싱글족 “추석이 미워요”

  • 입력 2005년 9월 1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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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만 ‘명절 증후군’을 앓는 게 아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싱글’들도 추석을 앞두고 ‘명절 스트레스’를 피할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왜 결혼을 안하느냐’는 주위의 압력 때문이다.

말하는 사람은 한 번이지만, 듣는 사람은 수십 번이니 스트레스는 갈수록 증폭된다.

그래서 명절을 앞둔 시점에는 결혼정보회사의 회원 수가 크게 늘어난다.

미혼이거나 이혼한 ‘돌아온 싱글’사이에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피해라’는 소리가 나온다.》

○ 정면돌파형? 무시형? 회피형?

“나이 너무 들면 아(아이)가 안 생겨.”

“니…. 혹시 여자한테는 관심이 없는 것 아이가?”

부산이 고향인 회사원 장모(34) 씨가 명절마다 듣는 말이다. 바쁜 척하고 안 가려 하면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백날 그리 일하면 뭐하노? 사람 구실도 못하는 게….”

장 씨는 올해부턴 ‘정면돌파’ 전략을 택했다. 지난 설날, 결혼 얘기를 꺼내는 친척들에게 그는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한다”며 버럭 화를 냈다.

순간 분위기는 잠잠해졌다. 의기양양해져 방을 나서는 그의 등 뒤로 들려오는 한마디. “저놈 빨리 결혼시켜야 된다. 저거 노총각 히스테리다.”

전북 전주시가 고향인 회사원 이모(28·여) 씨는 26세 때부터 “금값일 때 골라서 가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지친 이 씨는 이제 그렇게 말하는 친척에게 “이러저러한 남자를 당장 데려오라”며 오히려 큰소리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싱글은 겉으로 ‘네, 네’ 하면서 속으로 무시하는 전략을 쓴다.

전남의 한 섬 출신으로 서울에서 혼자 사는 임모(28·여) 씨는 명절 때마다 고향에 가서 선을 본다. 올해 설에도 어머니가 소개해 준 ‘근처 지역 유지의 아들’과 역 앞 다방에서 어색한 만남을 가졌다. 그는 “어차피 1년에 두 번 며칠간만 귀머거리가 된 듯하면 되니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게 편하다”고 말했다.

회사원인 김모(35·여) 씨는 독신주의자는 아니지만 친척들이 “결혼 안 할 거냐”고 물으면 진지한 표정으로 “네” 하고 대답한다. 그러면 오히려 당황해하며 화제를 돌린다고. 그는 “한 외국인에게 ‘결혼했느냐(Are you married?)’고 물었더니 ‘행복하다(I am happy)’고 대답하더라”며 “결혼하든 안 하든 자신이 행복하면 되는 것이니 남의 말에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명절을 이용해 여행을 가 버리는 ‘도피형’ 싱글도 있다. 벤처기업에 다니는 하모(33·여) 씨는 작년 설에는 일본으로 스키 여행을, 추석에는 이탈리아에 갔다 왔다. 올해 설에는 사귀던 남자 친구와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출발을 앞두고 그가 ‘명절에 여행 가는 게 부담스럽다’고 해 싸운 끝에 헤어지기까지 했다. 하 씨는 “서울에 있어봤자 친구들이 다 결혼해서 같이 보낼 사람이 없다”며 “이번에도 집에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결혼관은 바뀌고 있는데….

싱글들의 명절 스트레스는 ‘튀지 않고’ 남들과 비슷하게 사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부모 세대와 가족 관념에서 자유로운 젊은 세대 간의 갈등 때문이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함인희 교수는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가 차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식의 정형화된 삶을 선호한다”며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녀를 결혼시켜야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기에 결혼에 대한 압력이 거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혼과 가족의 관념에서 자유로운 젊은 세대는 이를 사생활 침해나 지나친 간섭으로 여기면서 부모 세대와 갈등을 빚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양상이 점점 완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결혼정보회사 선우의 이웅진 대표는 “만혼이 보편화 된 데다 이혼 및 재혼도 증가하고 동거 커플도 늘어나는 등 결혼과 가족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으므로 싱글들의 명절 스트레스는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씨는 친척들의 간섭은 걱정이라기보다 오히려 서로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오랜만에 만나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결혼 취직 자녀 출산 등 가족 문제이므로 별생각 없이 하는 것인데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대신 “요즘 요가 배운다며?” “이번에 대리 승진했다며? 축하해, 부서는 그대로야?” 등 진정한 관심이 배어 있는 말을 건네보라고 조언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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