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여성의 이름이 함께 있습니다. 로젤 속에는 무수한 여인이 들어가 있습니다. 연극이고, 그래서 극적이라는 것이 보통의 여자들과 다른 점이겠죠. 오늘날 여인들의 수많은 종류의 삶을 다 모아 봤습니다. 여인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얘기, 너의 얘기, 우리들의 얘기가 됩니다. 들으며 위로하고, 토해내며 위로받고 싶습니다. 그런 자리 평생 가질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을 토해내듯 다 털어 놓을 수 있을까요? 그런 상대 한 명쯤은 있나요? 로젤과 함께라면 가능하겠죠.
이 땅에 여성으로 태어나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 밥 벌어먹고 사는 일이 참 힘듭니다. 아직도 많이 힘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면서 제자리에 바로 서지 못함을 탓합니다.
![]() |
아버지 때문에, 엄마 때문에, 오빠 때문에, 남편 때문에, 사랑 때문에…. 하지만 “사실은 나 때문”이라는 로젤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가슴 절절이 와 닿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수만 있다면,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겠습니다. 부모가 반대해서, 형편이 어려워서, 시기를 놓쳐서 등등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죠. 이 중에 제일 속상한 이유는 부모의 반대일 겁니다.
자식들 너무 내 맘대로 내 뜻대로 키우지 말자고요, 그 애들이 하고 싶은 것 원하고 싶은 것을 하게 내버려 두자고요. 키울 때 잠깐 속상하고 말자고요. 평생을 로젤처럼 불행하게 사는 것을 지켜보는 것보다 낫잖아요.
14년간 로젤을 공연해 온 김지숙은 정말 행복하겠더라고요. 30년을 한결같이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늘 분명한 자기 안의 목소리를 외칩니다. 늘 투사정신이 강해서 전투적으로 살아왔습니다.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무대 위의 그녀는 나이를 읽을 수 없었습니다.
로젤에게 내내 쳐진 수많은 쇠사슬 같은 난관을 헤쳐 나가며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14년 전 로젤을 본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 싫어서 혼신의 힘으로 공연한다고 했습니다. 늘 로젤이 나인지, 내가 로젤인지, 로젤이 그녀 안에 들어와 괴로운 시간도 많이 보냈답니다. 이제는 로젤을 옆에 나란히 두고 지켜볼 정도가 되었답니다.
이게 연륜이고 나이겠죠. 나이 먹는다는 건 이래서 좋은 것 같아요. 이제는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연극을 하고 싶다 했습니다. 그 말이 참 듣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로젤처럼 그녀에게도 딸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우 양희경
구독 89
구독 0
구독 46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