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女優를 말하다]양희경이 본 ‘로젤’의 김지숙

  • 입력 2005년 9월 21일 03시 10분


‘여배우 시리즈’의 네 번째 무대인 김지숙의 모노드라마 ‘로젤’. 사진 제공 PMC
‘여배우 시리즈’의 네 번째 무대인 김지숙의 모노드라마 ‘로젤’. 사진 제공 PMC
지숙 지순 지선 지희 지혜 지애 애자 순자 영자 명자 옥자….

수많은 여성의 이름이 함께 있습니다. 로젤 속에는 무수한 여인이 들어가 있습니다. 연극이고, 그래서 극적이라는 것이 보통의 여자들과 다른 점이겠죠. 오늘날 여인들의 수많은 종류의 삶을 다 모아 봤습니다. 여인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얘기, 너의 얘기, 우리들의 얘기가 됩니다. 들으며 위로하고, 토해내며 위로받고 싶습니다. 그런 자리 평생 가질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을 토해내듯 다 털어 놓을 수 있을까요? 그런 상대 한 명쯤은 있나요? 로젤과 함께라면 가능하겠죠.

이 땅에 여성으로 태어나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 밥 벌어먹고 사는 일이 참 힘듭니다. 아직도 많이 힘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면서 제자리에 바로 서지 못함을 탓합니다.

양희경 씨

아버지 때문에, 엄마 때문에, 오빠 때문에, 남편 때문에, 사랑 때문에…. 하지만 “사실은 나 때문”이라는 로젤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가슴 절절이 와 닿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수만 있다면,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겠습니다. 부모가 반대해서, 형편이 어려워서, 시기를 놓쳐서 등등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죠. 이 중에 제일 속상한 이유는 부모의 반대일 겁니다.

자식들 너무 내 맘대로 내 뜻대로 키우지 말자고요, 그 애들이 하고 싶은 것 원하고 싶은 것을 하게 내버려 두자고요. 키울 때 잠깐 속상하고 말자고요. 평생을 로젤처럼 불행하게 사는 것을 지켜보는 것보다 낫잖아요.

14년간 로젤을 공연해 온 김지숙은 정말 행복하겠더라고요. 30년을 한결같이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늘 분명한 자기 안의 목소리를 외칩니다. 늘 투사정신이 강해서 전투적으로 살아왔습니다.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무대 위의 그녀는 나이를 읽을 수 없었습니다.

로젤에게 내내 쳐진 수많은 쇠사슬 같은 난관을 헤쳐 나가며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14년 전 로젤을 본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 싫어서 혼신의 힘으로 공연한다고 했습니다. 늘 로젤이 나인지, 내가 로젤인지, 로젤이 그녀 안에 들어와 괴로운 시간도 많이 보냈답니다. 이제는 로젤을 옆에 나란히 두고 지켜볼 정도가 되었답니다.

이게 연륜이고 나이겠죠. 나이 먹는다는 건 이래서 좋은 것 같아요. 이제는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연극을 하고 싶다 했습니다. 그 말이 참 듣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로젤처럼 그녀에게도 딸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우 양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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