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보티첼리… 피카소… 벽이 옷을 입는다

  • 입력 2005년 9월 23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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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미술전’ 벽화 부문에 참가하는 김경미(왼쪽) 김은혜 씨가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상가 벽에 그리고 있는 작품 ‘아일랜드’ 앞에서 미소짓고 있다. 위 사진은 스케치 하는 모습. 변영욱 기자 정양환 기자
‘거리미술전’ 벽화 부문에 참가하는 김경미(왼쪽) 김은혜 씨가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상가 벽에 그리고 있는 작품 ‘아일랜드’ 앞에서 미소짓고 있다. 위 사진은 스케치 하는 모습. 변영욱 기자 정양환 기자
《도시의 모든 벽엔 주인이 있다.

저택을 둘러싼 코발트색 담장부터 네온사인이 현란한 유흥가의 담벼락까지, 도시의 영역은 벽으로 구분된다.

벽은 영역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자 도시인을 가두는 울타리. 그러나 소통의 매개가 만들어지면 벽은 탈바꿈한다.

그 매개 중 하나가 벽화다.

벽화는 담장 안의 주인과 담장 밖의 행인을 소통시켜 줌으로써 도시 공간을 모두에게 되돌려 준다.

올해로 13회를 맞는 서울 홍익대의 ‘거리미술전’은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영역을 가르는 벽을 통해 서로 소통함으로써 도시를 공유하자는 취지다.

‘거리미술전’에서 소통의 벽화를 그리고 있는 화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홍익대 디지털미디어디자인학과 김경미(26) 김은혜(21) 씨의 벽화 ‘아일랜드’는 이탈리아 화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김경미 씨는 “꿈에서 비너스를 만난 소녀의 옅은 미소를 통해 꿈이 이뤄지는 즐거운 느낌을 받도록 했다”고 말했다.

벽화는 쉽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지만 그 공정은 매우 복잡하다. 먼저 이미 칠해져 있는 페인트를 떼어 내고 벽에 생긴 균열을 석고로 메운다. 사포로 벽을 고른 뒤 도색 접착제를 발라 기초 준비를 끝낸다.

다음은 배경 만들기. 대개는 흰색 페인트를 칠해 벽화를 위한 캔버스를 마련한다. 다음엔 목탄을 사용해 구상한 그림을 스케치한 뒤 갈색이나 회색 페인트로 외곽선을 그린다. 채색한 후 코팅제를 바르면 벽화가 완성된다. 작품마다 다르지만 김경미 김은혜 씨는 이번 작품을 위해 현장에서만 나흘 밤낮을 매달렸다.

이들은 이번 벽화를 위해 여름방학 대부분을 투자했다. 학생 때의 소중한 기억을 남기겠다는 바람도 있었지만, 예전에 ‘홍익대 앞’이란 단어가 줬던 ‘젊음과 문화’의 이미지를 되찾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컸다.

“예전에 ‘홍익대 앞’은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젊음의 열정이 예술적 향취로 표현되는 매력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흥 문화’가 판치는 곳이 돼 버렸습니다.”

올해 홍익대 거리미술전의 모토가 ‘재개발, 예술정비구역’으로 정해진 것도 이런 문제 의식 때문이다. 예술의 영혼을 다시 불어넣는 작업을 통해 홍익대 앞의 명예를 되찾자는 것이다.

‘자유’라는 주제로 또 다른 벽화를 그린 홍수진(25·만화가) 유미희(20·상명대 만화학부 2년) 씨는 이런 고민을 어울림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행인들이 지나가는 걸음에 눈길만 주더라도 편안함을 갖도록 했다.

이들은 “액자 속에 걸린 예술가들의 예술이 아니라 주점 벽에 그려져도 함께 감상을 나눌 수 있는 ‘모두의 예술’을 하고 싶다”며 “행인이 술에 취해 벽화에 실례를 한다 해도 모두의 것이 된 작품인 이상 상관없다”고 말했다.

28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이어지는 거리미술전에 그려지는 벽화는 13점. 연립주택의 벽부터 골목의 선술집 담벼락까지 다양한 벽이 그림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거리미술전 행사는 벽화를 선보이는 거리 전시를 비롯해 5가지 부문에서 열린다. 매일 저녁 홍익 어린이공원에서 비디오 아트 작품을 선보이는 영상제, 퍼포먼스 등을 포함한 무대 공연이 열린다. 또 작가들이 거리에서 창작 과정을 시연하고 행인들과 작품에 대해 논의하는 워크숍 부문과 행인들이 양초나 찰흙으로 작품 제작에 참여하는 참여미술 부문도 마련된다.

임나래(21) 전시팀장은 “이번 거리미술전은 상업화돼 가는 이 거리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좁게는 홍익대 앞, 넓게는 우리의 삶과 문화 전반에서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911년 멕시코 혁명후 대중예술로 자리매김▼

1960년대 미국 흑인 저항 운동의 상징이 된 ‘존경의 벽’.

벽화의 역사는 1만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석기 시대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비롯해 오랫동안 벽화는 인류의 미의식을 표현하는 작품이었다.

벽화가 대중 예술로 자리매김한 계기는 멕시코의 디에고 리베라가 주도했던 ‘벽화 운동’. 1911년 멕시코 혁명이 시작되자 리베라는 “미술관이라는 사치를 누릴 수 없는 빈민을 위한 예술 작품 창작”을 선언하며 이를 주도했다. 입체주의와 멕시코 특유의 색채를 섞은 화풍을 선보이며 혁명의 열기를 전했던 리베라의 작품은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1960년대 미국의 벽화들도 흑인 민권 운동 등 정치적 사회적 현실을 반영했다. 1967년 시카고에서 21명의 흑인 화가가 그린 ‘존경의 벽’은 흑인 저항 운동의 상징이 됐다.

디에고 리베라의 ‘캘리포니아 알레고리’.

한국의 벽화도 고구려 고분이나 경복궁 덕수궁의 꽃담 등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나 광복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도시를 꾸밀 수 있는 ‘환경 예술’에 무지했던 탓”(‘도시 환경과 벽화 디자인’·고성종 고필종 공저)으로 무시당했다.

이후 1994년 시행된 지방자치제에 힘입어 96∼97년 서울 시내 구청의 주도 아래 제작된 벽화가 46개에 이르지만 산수화나 단순 추상이 대부분이고 지하철이나 관공서의 벽 등 장소도 엇비슷해 식상함을 주고 있다는 평이다.

반면 서울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대합실에 그려진 ‘가자! 16강으로’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주제와 소재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만화 도시의 이미지를 위해 경기 부천시 12개 초중고교에 그려진 만화 캐릭터 벽화도 학생 동아리가 직접 그렸다는 점에서 평가받고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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