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단이 비난하는 데는 이유가 있고, 관객이 많이 보는 데도 까닭이 있는 법. ‘가문의 위기’ 중 핵심 장면과 대사를 두고 한 여성 영화평론가와 모녀 관객(58세 어머니와 28세 직장인 딸)의 엇갈린 소감을 들어보았다.
① “너 오렌지가 영어로 뭔지 아냐?”(둘째 아들 석재) “익숙헌 단언디….”(셋째 아들 경재) “이런 무식한…. 델몬트여, 델몬트.”(석재) “아, 델몬트. 아깝구만잉.”(경재) “석재야. 그럼 썬키스트는 영어로 뭐냐?”(큰 아들 인재) “….”(일동)
▽비평가=말장난에도 슬랩스틱(법석을 떠는 것)이 있다. 이는 수준 높은 언어 유희가 아니라 말초적 말장난에 불과하다. 여섯 살만 돼도 아는 영어단어조차도 모르는 등장인물의 캐릭터는 영화가 노리는 타깃 관객이 누군지를 잘 보여준다. 영화의 ‘창조적 지력’의 수준을 보여준다.
▽모녀=배꼽 빠지는 줄 알았다. 1절만 하지, 2절 ‘썬키스트’까진 안 했더라면 더 산뜻했을 텐데. ‘루이비똥’이란 브랜드를 몰라서 석재가 “똥은 무슨 똥?”할 때도 웃다가 죽는 줄 알았다.
② 중국산 가슴 확대 크림을 바른 여검사 진경은 다음날 가슴이 딱딱하게 굳어 고통스러워한다. 사정을 모르는 인재는 진경을 오토바이 뒷자리에 태운 채 계단으로 오토바이를 몬다. 진경이 “아아아”하는 신음의 뜻을 착각하고 좋아하는 인재.(사진)
▽모녀=영화 중 가장 웃겼던 장면이다. 우와, 얼마나 아팠을까.
▽비평가=섹스 코미디라고 나쁜 게 아니다. 문제는 신체의 일부에 국한되는 편협함. 이는 삽입성교만을 강요하는 마초처럼 폭력적이다. 진경의 가슴과 인재의 성기만 부각시키는 건 곧 가슴이나 남근이 성적 지표라는 사실과 통한다. 거기에는 포르노 잡지나 동영상을 뒤지는 유치한 호기심 정도밖에 없다.
③ 조폭 여두목 홍 회장은 자신의 등에 새겨진 호랑이 문신을 며느리에게 보여주며 한탄한다. “난 말이여, 공중 목간 한번 가 보는 게 소원이여. 이 꼴(문신)을 하고 있응께 한번도 그런 데를 못 가봤다. 우리 아그들헌테는 이런 팔자를 물려주지 말았어야 하는 것인디….”
▽비평가=조폭이라는 위험한 실체를 가족 이데올로기나 한 여자의 일생으로 희석시키려는 위험한 발상이다. 조폭 생활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뛰어들어야 했던 숭고한 어머니의 희생처럼 미화시켰다. 어머니의 눈물이야말로 관객의 객관적 판단을 흐리게 하는 포인트임을 알고 있는 제작자의 불순한 의도와 연관된다.
▽모녀=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웃긴 영화로만 알았는데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부모 마음은 누구나 다 같다는 걸 느꼈다. 자식이 늘 눈에 밟히는 것이다.
④ 결국 홍 회장 가족은 진경을 며느리로 받아들인 뒤 조폭 해단식을 갖는다.
▽모녀=비록 조폭이지만 결국 손 씻고 새로운 삶을 산다는 희망과 교훈을 주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래서 조폭가족이 변하지 않는 ‘가문의 영광’보다 이 영화가 더 남는 게 있는 것 같다.
▽비평가=좋은 조폭, 나쁜 조폭이 있다는 가정 자체가 억지스럽다. 검사가 조폭과 손잡는다는 설정은 억지 설정을 해결하려는 아전인수식 결말에 불과하다. 이는 단지 설정에 덧붙인 결론일 뿐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적 선택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 훌륭한 며느리를 얻기 위해 가업을 포기하는 것이지, 진정 과오를 후회한다는 맥락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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