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골방에 처박혀 시를 쓰다가
문 밖 확성기 소리를 엿듣는다
계란…(짧은 침묵)
계란 한 판…(긴 침묵)
계란 한 판이, 삼처너언계란…(침묵)…계란 한 판
이게 전부인데,
여백의 미가 장난이 아니다
계란, 한 번 치고
침묵하는 동안 듣는 이에게
쫑긋, 귀를 세우게 한다
다시 계란 한 판, 또 침묵
아주 무뚝뚝하게 계란 한 판이 삼천 원
이라 말하자마자 동시에
계란, 하고 친다
듣고 있으니 내공이 만만치 않다
귀를 잡아당긴다
저 소리, 마르고 닳도록 외친다
인이 박여 생긴 생계의 운율
계란 한 판의 리듬
쓰던 시를 내려놓고
덜컥, 삼천 원을 들고 나선다
- 시집 ‘악어’(실천문학사) 중에서
인이 박인 생계의 운율을 지닌 이, 계란장수뿐이겠는가. 우리 동네엔 ‘꿀, 꿀, 꿀, 상주 꾸울 참외가 왔습니다. 삼천 원에 한 보따리씩 들여가세요’ 듣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도는 참외장수가 있고, ‘고등어가 왔어요, 갈치가 왔어요, 동해바다가 통째로 왔어요’ 외치는 확성기 음유시인도 있다. 팍팍한 생계가 가락이 되도록 얼마나 제가끔 마르고 닳았을까. 저 소리 알아듣는 시인의 귀도 예사롭지 않다. 어떤 이들에겐 성가신 소음에 지나지 않았을 터. 시인의 첫 시집 ‘악어’는 시종 능청스러우면서도 서늘하다. 이 가을, 우리 시단은 ‘내공이 만만찮은’ 새 시인 하나를 갖게 되었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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