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시장-정부 무엇이 문제인가

  • 입력 2005년 9월 30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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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대기업 정책을 재조명하는 ‘국가경영전략포럼 심포지엄’이 29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렸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한국 재벌의 지배구조와 관련 정책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정부의 대기업 정책을 재조명하는 ‘국가경영전략포럼 심포지엄’이 29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렸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한국 재벌의 지배구조와 관련 정책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정부의 대기업 정책과 대기업 지배구조 등을 재조명하는 심포지엄이 29일 국가경영전략포럼(대표 양수길·楊秀吉) 주최로 서울 중구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렸다. 동아일보사 후원으로 개최된 이번 심포지엄은 ‘대기업과 시장 및 정부,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조명현(曺明鉉)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신광식(申光湜)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이 주제발표를 하고 이에 대해 전문가들이 토론을 벌였다. 강철규(姜哲圭)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기조연설을 통해 “개편된 대기업집단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제한 제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 점검하고 필요하면 보완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최근에 발생한 대기업의 경영권 분쟁이나 X파일 사건은 대기업집단의 후진적 소유지배구조에서 비롯됐다”며 “시장경쟁 측면에서도 불투명한 경영관행과 왜곡된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삼성 및 두산 문제 등과 관련해 “기업의 과거가 불거지면 국민은 현재의 문제로 느낀다”면서 “과거 문제로 기업들을 지나치게 몰아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음은 이날 주제발표 요지.》

○ 한국 재벌의 지배구조와 관련 정책

한국의 재벌은 오너 중심의 가족경영을 하는 체제이다. 총수와 가족들의 지분은 5% 정도에 그치지만 그룹 내 복수의 계열회사들이 30∼40%를 출자하고 있어 실제 총수가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은 50% 가까이 된다.

총수가 경영 의사결정 과정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권력에 부합하는 책임은 묻기가 어려운 구도다. 하지만 총수를 견제하기 위해 전문경영인 체제로 이행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소유 경영 체제보다 낫다는 결론을 내리기엔 이르기 때문이다.

조명현 고려대 교수

금융산업구조개선법이나 재벌계열 금융회사의 의결권 제한 같은 조치는 총수가 경영을 잘못하면 시장에서 인수합병(M&A)을 당할 수 있고 계열사 간 부당지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통제 아래 놓여 있는 연기금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열어 놓으면 정부가 직접적으로 컨트롤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 제도가 자칫하면 정부의 ‘재벌 길들이기’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와 같은 재벌 구조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본다. 현대그룹처럼 가족들이 대물림을 하는 과정에서 전문화된 소규모 그룹으로 분화되기도 하고 재벌 2, 3세의 경우 창업주보다 카리스마나 능력이 뒤처질 수도 있다.

○ 경쟁정책 관점에서 본 공정거래법

신광식 김&장 고문

현행 공정거래법은 1986년 개정 당시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출자총액제한 △상호출자 금지 △금융보험회사의 의결권 행사 금지 등의 규제 조치를 잇달아 도입했다.

기본적으로 공정거래법은 미국의 반트러스트법이나 독일의 경쟁제한금지법에 상응하는 경쟁법이다. 하지만 한국의 공정거래법에는 재벌이라는 한국 특유의 기업집단 조직의 ‘독특한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가 추가돼 있다.

공정위의 대규모 기업집단 규제는 재벌에 대한 시장규율이 미약한 상황에서 재벌의 과도한 확장과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규제 위주의 접근으로는 재벌 구조와 행태를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또 규제에는 여러 부작용과 비용이 따른다.

더욱이 재벌 정책의 개념과 목적이 불분명하고 너무 포괄적이어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곤란하다.

출자총액제한제도 같은 규제는 범위와 내용이 수시로 바뀌고 있는데 이럴 경우 정책의 지속성과 실효성을 높이기 어렵고 기업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재벌 규제는 국내 문제에 국한한 정책이기 때문에 경제가 개방되면서 국내 대기업과 외국기업 간 역차별을 초래하기도 한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대기업 규제' 엇갈린 공방

29일 심포지엄에서 토론자들은 대기업 규제의 필요성과 방법론에 있어서 적지 않은 시각차를 보였다.

송옥렬(宋沃烈) 서울대 법학부 교수는 “사외이사는 경영진이 악(惡)을 행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데 목적이 있다”면서 “사외이사를 지배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사람들로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재벌 문제를 해결하려면 회사 경영에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불만이 있을 때 시끄럽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며 대표소송이나 집단소송제의 적극적인 도입을 주장했다.

연태훈(延泰勳)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기업지배구조는 나라마다 경제사회적 여건에 따라 다르고 한 나라 안에서도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면서 “획일적인 모델을 제시하는 데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출자총액제한제도나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 같은 규제는 이해당사자 스스로 취하는 조치가 정착되면 단계적으로 축소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승(李相承)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벌에 대한 규제를 담은 ‘기업집단에 대한 회사법’을 새로 만드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출자총액제한제도나 지주회사 조항 및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 조치 같은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모호한 목표에 입각한 조항들은 삭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주선(李柱善)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재벌구조가 폐해를 낳고 있기 때문에 해체하거나 규제하는 게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재고해야 한다”며 “대우그룹처럼 실패한 재벌을 탓하지만 남아 있는 일류기업 중 재벌이 아닌 곳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기업지배구조에는 정답이 없다”며 “기업들의 경쟁수단인 지배구조를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재벌개혁위원장인 홍종학(洪鍾學) 경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경제에서 경쟁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재정경제부의 중상주의(重商主義)적 관치(官治)”라며 “공정한 경쟁규칙이 전제되지 않은 규제완화는 시장왜곡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했다. 홍 교수는 “현재 상태의 기업집단을 방치한 상태에서 경쟁을 촉진해 경제의 효율성을 높인 역사적인 사례는 없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동규(李東揆) 공정거래위원회 정책국장은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에 따라 2007년에 상황을 평가해 대기업 규제정책을 재검토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다만 아직은 사후 규제로 넘길 정도로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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