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우리 곁으로]청계 8경 산책…현대와 과거 한자리에

  • 입력 2005년 9월 30일 03시 15분


어디를 걸어도 좋기만 한 청계천. 파란 하늘과 그 하늘이 고스란히 담긴 맑은 물, 곳곳에 설치된 예술품들은 프랑스 파리의 센 강이 부럽지 않다.

어느 곳 하나 빼놓을 곳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청계 8경’만큼은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꼭 봐야만 할 명소. 거기서 푸르디 푸른 가을을 받으며 청계천에 발을 담그고 사랑과 우정과 인생을 이야기해 보자.

▽청계천의 시작, 청계광장=서울의 서북쪽 북악산, 인왕산 사이에서 발원된 청계천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 흐르기 시작하는 곳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동아일보사) 앞에 조성된 700여 평의 광장이다.

광장과 수변공간으로 구성돼 있으며 광장은 전체적으로 보자기 형태를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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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바닥에는 각양각색의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설치돼 밤이면 빛과 물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경관을 연출한다. 길이 60m로 축소된 청계천 미니어처도 설치돼 있다.

광장 바로 아래 수변공간에는 인공폭포와 경기 일동석, 충청 천안석, 전라 고흥석을 비롯해 함경 평안 황해의 돌까지 망라한 ‘조선 8도석(石)’이 물길 바닥면을 장식했다.

▽임금이 지나다닌 광통교(廣通橋)=조선시대 청계천 다리 중 가장 큰 다리로 대광통교라고도 불렸다. 원래 있던 곳은 중구 남대문로1가 조흥은행 본점 앞 광교사거리지만 복원공사를 시작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처음에는 토교(土橋)였으나 1410년(태종 10년)에 현재와 같은 돌다리로 만들어졌다.

어가와 사신 행렬이 지나가는 중요한 교통로로 여러 시기에 청계천을 고친 기록이 새겨져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야경이 아름다운 리듬벽천과 터널분수=청계8가 황학교에 이르면 높이 5m, 폭 20m의 대리석으로 된 ‘황학리듬벽천(壁川)’을 볼 수 있다.

벽에 까만 돌들을 박아 물고기가 물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 조형물에는 빨강, 파랑, 초록 등 5가지 색깔이 혼합된 282개의 LED 조명이 설치돼 밤의 운치를 더한다.

벽천 앞에 설치된 돌 징검다리를 건너 청계천을 건너는 것도 시골 냇가를 건널 때의 운치를 준다.

황학리듬벽천에서 비우당교 쪽으로 200m 정도 걸어가면 ‘터널분수’가 나온다.

42개 노즐에서 뿜어 나온 물줄기가 50m 길이의 산책로 위를 넘어 포물선을 그리며 하천으로 떨어지는데, 분수 밑을 걸으며 물방울을 맞는 재미가 그만이다.

리듬벽천과 터널분수는 밤에 봐야 제멋을 느낄 수 있다.

▽세계 최장의 도자 벽화, 정조대왕능행반차도=반차도는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이 1795년 윤 2월에 사도세자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모친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수원)을 다녀와서 그 의전행렬을 상세하게 기록한 것. 4960장의 도자판을 하나하나 이어 붙여 원본의 모습을 재현했다.

왕의 행차가 창덕궁을 떠나 광통교를 건너 화성으로 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1779명과 779필의 말이 표현되어 있다.

길이 186m, 높이 2.4m의 세계 최대 규모의 도자벽화로 광교와 삼일교 사이에 있는 장통교를 중심으로 병풍처럼 청계천을 휘감고 있다.

원본은 김홍도 등 당대의 일류 화가들이 그린 것으로 왕조의 위엄과 질서를 장엄하게 표현하면서도 낙천적이고 자유분방한 인물 묘사가 돋보인다.

▽2만 명의 소원이 담긴 소망의 벽=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의 양쪽 산책로에는 ‘소망의 벽’이 조성돼 있다. 길이 50m, 높이 2.1m의 이 조형물은 가로세로 각각 10cm의 자기질 타일 2만 개로 구성돼 있으며 각각의 타일에는 참가자들의 소원과 희망이 저마다의 솜씨로 그려져 있다.

부모 친구 애인에게 하고 싶은 말, 장래 희망, 자녀들에게 바라는 아버지의 당부 등 갖가지 소원이 어설프지만 정감 있는 그림으로 담겨 있어 마치 어린이집에 놀러온 느낌을 준다.

▽청계천에서 빨래나 해 볼까? 청계천 빨래터=‘정이월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들 시렵지 않은 모양이다.’ 박태원은 소설 ‘천변풍경’에서 청계천 빨래터를 이렇게 묘사했다.

한양 천도 후 조선 왕조는 청계천으로 인한 홍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치수 사업인 개천 사업을 벌였고 그 결과 청계천은 도성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생활하천으로 탈바꿈했다. 아낙네들에게는 빨래터로, 아이들에게는 놀이터로 활용되기도 한 것.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 되살려 낸 ‘청계 빨래터’는 이런 생활하천의 느낌을 고스란히 주는 곳이다. 다소 고즈넉한 분위기에 물속에 반쯤 잠긴 빨래판 모습의 돌과 그 앞에 정겹게 놓인 징검다리를 보노라면 어디선가 동네 아낙네들의 수다와 빨랫방망이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사과나무 거리를 걷자=‘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 보자’란 대중가요처럼 그 모습을 물씬 풍기는 곳도 있다. 종로는 아니지만 청계천을 따라 걷다가 가장 끝 지점인 고산자교 부근에 도착하면 충북 충주시에서 기증한 사과나무 120그루가 가로수로 시원하게 서 있다. 크지는 않지만 이미 파란 사과가 열려 충청도의 어느 과수원에 온 느낌.

청계천과 합쳐지는 정릉천에서 흘러들어온 물이 흐르는 하류에는 바닥에 깔린 자연석 사이로 창포 갯버들 도루박이 등이, 벽면에는 줄사철나무 등 덩굴식물이 자라 생태지역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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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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