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우리 곁으로]청계천의 역사…생명천으로 다시 흐른다

  • 입력 2005년 9월 30일 03시 15분


《서울 도심 한복판을 유유히 흐르는 청계천.

이번 복원사업으로 세간의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지만 사실 청계천과 관련된 공사는 그 역사가 깊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공사는 조선 태종(1411년) 때.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해 개거도감(후에 개천도감으로 바뀜)을 설치하고 연인원 5만2000여 명을 동원해 하상을 파내고 하폭을 넓혔다.

이후 고종 때까지 청계천에서는 수시로 준설 공사가 이뤄졌으며 6·25전쟁 직후의 피폐한 상황에서도 하수도 개수 공사가 추진됐다.

청계천에서 잦은 준설, 복개 공사가 이뤄진 것은 하천 범람, 위생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조선 왕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청계천 공사와 관련된 역사를 알아본다.》

동영상으로 보는 청계천 사진으로 보는 청계천

영조의 청계천 준설 참관 모습 목판화.
▽조선시대▽

태종은 1411년 11월 연인원 5만2800명을 동원해 대규모 개천공사를 시작했다.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해 일부 구간의 하상을 파내고 하폭을 넓히는 한편 돌과 나무로 제방을 쌓은 것. 이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청계천 공사다.

조선왕조가 청계천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는 이미 태종 때 하천의 관리를 맡은 기관인 ‘개거도감’이 설치된 점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 세종 때는 도성의 개수와 방수, 방화를 전담하는 기관으로 수성금화도감이 설치됐고 성종 때는 개천가에 버드나무를 심어 수해에 대비했다.

1760년 2월 영조는 연인원 20만 명을 동원해 57일간의 대역사를 시작했다.

도성의 인구가 늘어 산림이 훼손되면서 토사가 청계천으로 유입돼 준설을 하지 않으면 안됐기 때문이다.

하천을 준설하는 동시에 수로를 직선으로 변경하고, 양안에 석축을 쌓는 행태로 진행된 이 공사에 동원된 인원은 지금의 청계천 복원사업에 동원된 연인원과 맞먹는다.

이 같은 준천은 정부의 재정 곤란 속에서도 2, 3년마다 한 번씩 정례적으로 실시돼 1908년까지 지속됐다.

1910년대의 오간수문 모습.
▽일제강점기▽

피폐한 농민들이 경성으로 올라오면서 청계천변은 이들이 지은 무허가 임시 건물이 난립하기 시작했다. 임시 가옥의 난립은 심각한 위생 문제를 야기했다.장마 때면 가옥이 침수되고 전염병이 돌아 바로 전 시가를 휩쓸었던 것.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일제가 생각한 가장 간편한 방법이 바로 ‘복개’였다.

청계천을 복개하려는 최초의 계획이 수립된 것은 대한제국 때 일로 1895년 내부령 제9호로 종로 가옥의 철거와 도로확장계획이 발표됐다. 또 1909년에는 청계천 일부 구간을 메운 일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복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청계천을 복개해 그 터를 상업부지로 이용하려는 계획은 1926년에도 제기됐으나 홍수 시에 배수가 곤란하다는 이유로 당국이 기각했다.

청계천 ‘전면’ 복개 구상은 1935년 최초로 나왔다. 당시 경성부는 청계천을 전면 복개해 도로를 만들고 그 위로 고가철도를 놓는 구상을 발표했다. ‘대경성 계획’으로 영등포를 비롯한 1군8면이 새로 경성에 편입될 경우 당시의 시설만으로는 늘어나는 교통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이 구상은 재정 문제를 내세운 조선 철도국의 거부로 좌절되었다.

복개를 위해 기둥을 박은 1960년대의 모습.
▽광복이후▽

청계천은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을 전후해 10여 년을 방임상태로 둬 토사 매몰이 극심했다.

이 때문에 6·25전쟁 직후 피폐한 상황에서도 정부는 1954년 5200만 환을 투입해 청계천을 포함한 하수도 개수를 추진하였고 다음 해에는 광교 상류 135.8m의 청계천 암거공사를 실시해 일제강점기에 일부를 복개한 후 첫 번째 복개공사를 실시하였다.

본격적인 복개공사는 1958년 5월 광교에서 동대문 오간수다리(평화상가 앞)까지 약 2km를 철근 콘크리트로 복개한 것이다.

이 방대한 공사는 완성되기까지 총 16억6170만 환의 공사비가 소요됐고 연인원 24만2000명이 동원됐다.

그 후 동대문의 오간수교∼제2청계교 구간이 복개됐고 오늘날 마장철교까지의 복개구간은 1978년에 완성됐다.

‘청계천 복원공사’는 청계천 고가도로와 복개도로가 건설된 지 수십 년이 지나 더는 보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노후됐기 때문.

2003년 7월 1일. 1955년 광교 상류지역을 복개한 이래 48년 만에 덮었던 청계천을 다시 여는 공사가 시작됐다.

2005년 6월 1일에는 처음으로 청계천에 물을 흘리는 통수식을 가짐으로써 대부분의 공사를 마쳤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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