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그림책은 아이뿐만 아니라,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는 엄마의 마음까지 순수하고 따뜻하게 만든다.
이 책은 거리에 버려진 보잘것없는 작은 마분지가 역시 길바닥에서 살아가는 떠돌이 아저씨 레옹을 만나 함께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특히 어린이 그림책은 나이에 따라 다른 의미로 읽힌다.
유치원을 다닐 정도의 꼬마라면 아마도 이 그림책의 이야기나 내용보다는 그림에 더 관심을 가질 것 같다. 알록달록 요란한 색깔을 입힌 그림 대신 둥글둥글 부드러우면서도 단순한 선의 일러스트레이션에 부분적으로만 채색한 귀여운 그림이 돋보인다. 여기에 마분지만 실제 사진으로 찍어 입체감을 살렸다. 특히 혼자 심심해진 마분지가 모습을 바꿔 배가 되기도 하고, 나폴레옹 모자로, 암탉으로 모습을 바꾸는 그림은 이 또래의 아이들이 즐겨하는 종이 접기 놀이와 자연스럽게 연결돼 아이들의 눈길을 끌 만하다.
하지만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던 엄마라면, 책의 내용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소소한 아이들의 일상을 다룬 그림책과 달리 이 책은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제법 무게 있는 메시지도 던져 준다.
스스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하던 작은 마분지는 레옹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삶을 바꿔 놓는다. 작은 마분지는 레옹에게 이불이 되기도 하고, 식탁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책이 되어주기도 한다. 마분지는 친구가 슬퍼지면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차도, 배도, 비행기도 되어 보고, 집도 되어 준다. 이렇듯 소소한 일상을 나누면서 마분지와 레옹은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어른들에게는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그림책. 작은 마분지가 레옹의 머리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 순간, 둘은 서로에게 ‘꽃’이 된 셈이다.
작은 마분지와 레옹이 마침내 바다를 향해 함께 떠나는 결말은, 혼자서 걷는 삶은 고달프고 힘들어도 서로 믿고 의지하는 누군가와 함께라면 두려움도 없고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존재의 의미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자녀에게는 ‘친구’의 의미와 필요성 정도로 풀어서 이 그림책을 설명해 주면 좋을 듯. 짧고 몇 줄 안 되는 문장들이지만, 김화영 고려대 교수의 따뜻하고 서정적인 번역도 빛난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