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 아침의 시’다.
남의 시를 골라주는 데 힘쓰던 그가 최근 두 번째 시집 ‘웃음 의 힘’을 시와시학사에서 펴냈다.
이 시집을 보면 그는 무거운 것들 에 염증을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룩하고 신성한 것, 그러면서 둔중하고 어두운 것은 그가 새로 펴낸 시집의 색깔과 맞지 않다.
그는 유머러스하게 자기 인생을 파악하고 있다.》
‘어머니는 마흔넷에 나를 떼려고/간장을 먹고 장꽝에서 뛰어내렸다 한다/홀가분하여라/태어나자마자 餘生(여생)이다’(‘일찍 늙고 보니’)
이렇게 해서 반 씨가 겪은 인생이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그는 ‘삶’이란 시에서 이렇게 썼다. ‘벙어리의 웅변처럼/장님의 무지개처럼/귀머거리의 천둥처럼’. 반 씨는 감꽃을 바라보다가 삶이 잠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장독대 위에/감꽃이 지네/투욱―/이승에서 저승으로/장맛이 익는 사이’(‘감꽃’)
반 씨는 “시란 무료한 일상에서 기지개를 켜다가 은하수 천정의 별들과 부딪힌 흔적들이다. 우수수 내게 전율을 주었던 그 찰나적 감전의 기억들이다”고 말했다. 70편에 달하는 그의 새 시들 가운데는 달팽이나 박꽃 딱따구리 갈대처럼 그가 한번 슬쩍 마주친 ‘작은 자연’들을 노래한 시들이 있다. 번뜩이는 직관과 익살이 담겨 있어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의 감칠맛 나는 ‘박물지(博物誌)’를 연상시킨다. 그는 갈치조림을 먹으면서는 이렇게 생각했다. ‘얼마나 아팠을까?/이 뾰족한 가시가 모두 살 속에 박혀 있었다니’(‘갈치조림을 먹으며’)
아마 그가 기차를 타고 가다가 썼을 ‘호도과자’라는 시는 참 익살맞다. ‘쭈글쭈글 탱글탱글/한 손에 두 개가 다 잡히네?/수줍은 새댁이 양 볼에 불을 지핀다/호도과자는 정말 호도를 빼닮았다//호도나무 가로수 下 칠십년 기찻길/칙칙폭폭, 덜렁덜렁/호도과자 먹다 보면 먼 길도 가까웁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의 특징은 짧다는 것. 주로 3∼5행의 시들이다. 고질병 같은 나쁜 버릇들을 고치겠다고 호언하는 사람들을 빗댄 시 ‘뻐꾸기의 서원(誓願)’은 단 1행이다. ‘지빠귀를 밀어내지 않는다’가 전문이다.
반 씨는 “말은 다함이 있어도 뜻은 무궁한(언유진이의무궁·言有盡而意無窮) 시 세계를 추구하고 싶다. 화려한 수사를 다 쳐냈다. 독자들과 간명하게 소통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시를 대하는 이러한 정신은 모순 많은 세태를 촌철살인의 시어들로 꼬집을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제단에 돼지머리를 바치며 빈다/아무도 아무를 해치지 않는 세상 되게 하옵소서’(‘어떤 기구·祈求’)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사람이 노래하자/제초제가 씨익 웃는다’(‘공범’)
그러나 어떤 경우에라도 반 씨의 시에는 유머가 있고, 긍정의 힘이 있다. 그는 “꽃잎 하나를 지렛대로 일상의 무게를 번쩍 들어 올리는 것, 그게 시이며 예술의 감동이다”고 말했다. 타이틀 작품인 ‘웃음의 힘’을 보면 그가 잡아내고자 하는 아름다움을 알 것 같다.
‘넝쿨장미가 담을 넘고 있다/현행범이다/활짝 웃는다/아무도 잡을 생각 않고 따라 웃는다/왜 꽃의 월담은 죄가 아닌가?’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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