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단이 올 크리스마스에 서울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올리는 뮤지컬 ‘크리스마스 캐롤’에 출연할 청소년 배우를 뽑기 위해 소년원생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실시한 것. 자유롭게 바깥출입을 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심사위원들이 직접 소년원을 찾았다.
○‘학생’들, 오디션 보다
분홍빛 소년원 건물에는 ‘안산예술종합학교’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아이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2000년부터 전국의 소년원 명칭이 ‘학교’로 바뀌었다”고 누군가 귀띔했다. 창문마다 창살이 있는 점을 빼고는 일반 중고교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지난해 문을 연 이 ‘학교’에 수용돼 있는 학생들은 100여 명. 대부분 절도, 폭력, 강도 등으로 6∼24개월의 보호처분을 받은 12∼20세의 청소년들이다. 소년원 중 유일한 예술계통의 학교이자 ‘남녀공학’인 이 학교 학생들은 전국 소년원에서 예술에 소질 있는 아이들이 지원해 선발됐다.
최종적으로 5명이 선발된 이날 오디션에는 여학생 2명, 남학생 17명 등 총 19명의 학생이 참가했다. 지정곡은 피아노 반주에 맞춰, 자유곡은 노래방 기기에 맞춰 불렀다. 오디션을 본 학생들에게 “뮤지컬이나 연극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TV에서 봤다”고 답했다.
이 학교의 이동환 교장은 “이곳 아이들은 가정이 불우해 피아노나 미술 학원에 다녀 본 학생이 거의 없다”며 “만약 어릴 때부터 제대로 교육을 받았다면 누구 못지않게 잘할 만큼 소질 있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희망이 담긴 따뜻한 오디션
3시간 걸린 오디션 내내 분위기가 따뜻했다. 조금이라도 노래를 못한다 싶으면 “됐습니다” 하고 가차 없이 도중에 노래를 끊는 일반 오디션과 달리 심사위원 모두가 단 한 명도 중간에 끊는 법 없이 끝까지 들어 주고 음정이 불안정한 학생은 같이 따라 불러 주기도 했다. 음치인 학생에게는 다른 기회를 주려는 듯 “혹시 춤을 잘 추면 한번 춰 볼래요?” 하고 예정에 없던 주문을 하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에게서 노래, 연기 모두 ‘프로급’이라는 호평과 함께 최종 선발된 문형석(17) 군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연극이라는 것을 알게 돼 너무 좋다”며 “나쁜 짓을 해서 여기에 와 있지만 2007년 이곳에서 나가면 꼭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이병훈 씨는 “소년원생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깰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하고 재능 있는 학생도 발굴하고 싶어 이번 오디션을 실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디션이 끝난 뒤에도 지정곡이었던 ‘기쁨 넘치네’의 노랫말이 한동안 귓가를 맴돌았다. 착한 사람이 된 스크루지가 부르는 이 곡은 이날만큼은 이 학교 아이들의 고백처럼 들렸다.
“모든 세상이 달라 보여/다시 태어난 것만 같아…/난 이제 모든 것을 알았어/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새로운 세상이 내 앞에 다가오는 것 같아/새로운 내 인생/난 이제부터 시작할 거야….”안산=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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