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월은 주로 흩어진 위(魏)나라 군사들을 거두어들여 군세(軍勢)를 불렸을 뿐만 아니라 한왕에게 항복하기 전에도 외황을 근거지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 뒤에 다시 한왕이 팽월을 위나라 상국(相國)으로 삼아 양(梁) 땅과 연고가 더욱 두터워지니, 이 땅의 백성들조차 그를 따르는 것 같습니다.”
용저가 성을 떨어뜨리지 못한 것을 변명하듯 그렇게 말했다. 이를 지그시 사리물고 듣던 패왕이 혼잣말처럼 받았다.
“늙은 도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겁내는 거겠지. 그렇다면 성안 백성들에게 팽월보다 더 무서운 과인이 있음을 알려주어야 겠다.”
그리고는 도필리(刀筆吏)들이 있는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오늘밤 안으로 수백 통의 글을 써서 성안으로 쏘아 보내라. 만일 과인에게 항복하지 않고 버티다가 성이 떨어지는 날이면 성 안에서 열다섯 살이 넘는 남자는 아무도 살아날 수 없을 것이라고. 모두 성 밖으로 끌어내 산 채로 땅에 묻을 것이라고. 그리고 또 덧붙여라. 하루를 더 기다려 줄 테니, 성 안 백성들은 힘을 합쳐 팽월의 졸개들을 쫓아내고 성문을 열어 과인에게 목숨을 빌라고.”
그런 패왕의 명에 따라 그날 밤 외황성에는 화살에 매달린 흰 비단천이 눈송이처럼 휘날리며 날아들었다. 이튿날 패왕은 정말로 군사를 내지 않고 하루를 기다렸다. 그러나 성안에서는 여전히 항복하려는 기색이 없었다. 날이 저물자 패왕은 한 번 더 문루 앞으로 나가 성안 군민들을 겁주었다.
“너희들이 아무래도 권하는 술은 마시지 않고 벌주를 받으려고 하는구나. 과인이 마음만 먹으면 이따위 성은 질그릇 부수듯 할 수 있다. 양성(襄城)과 신안(新安)의 일이 남의 얘기가 아닐 것이니라.”
양성과 신안은 모두 패왕 항우가 싸움에 이기고 사로잡은 적병을 모조리 생매장한 곳이다. 특히 신안에서 20만 항졸(降卒)을 산 채로 묻은 일은 울던 아이도 ‘항왕이 온다(項王來)’고 하면 그칠 정도로 천하가 패왕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패왕은 우레 같은 소리로 그렇게 거듭 성안을 향해 외쳤을 뿐만 아니라, 다음 날 정말로 전군을 들어 마지막 공격을 준비하였다.
초나라 군은 바깥에서 에워싸고 있는 쪽이라 물자가 넉넉한 데다 머릿수도 원래부터 성 안에서 지키는 군민의 몇 배가 되었다. 하루 사이에 구름사다리가 수풀처럼 세워지고, 성문을 부술 충차(衝車)와 쇠뇌를 건 바퀴 달린 누각도 성밖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도 외황성은 아무런 흔들림 없이 또 하루를 더 버텨냈다.
“어쩔 수 없다. 내일 새벽 날이 밝는 대로 성을 친다. 이번에는 전군을 몰아 반드시 성을 떨어뜨려야 한다.”
더 참지 못한 패왕이 마침내 그런 명을 내렸다. 그런데 미처 그 밤이 새기 전이었다. 갑자기 외황성의 동문이 열리며 한 갈래의 군사가 치고 나왔다.
글 이문열.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