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라디오 방송 “방송은 아마추어, 동네 소식엔 프로죠”

  • 입력 2005년 10월 12일 03시 08분


7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빌딩 사무실에 마련된 소출력 라디오 방송국 ‘마포FM’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프로그램을 녹음하고 있다. 김윤종 기자
7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빌딩 사무실에 마련된 소출력 라디오 방송국 ‘마포FM’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프로그램을 녹음하고 있다. 김윤종 기자
“주민 여러분∼ 동네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춰 주세요. 우리 동네 주유소 기름 값이 인상됩니다.”

“봉천동 사거리 가로등이 부족해 밤에 걷기 어렵습니다. 보완이 필요합니다.”

동사무소의 대형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소식이 아니다. 라디오로 전파되는 ‘동네 방송’이다. 9월부터 본 방송이 시작된 소출력 라디오 방송. 기존 FM라디오 주파수(88∼108MHz)대역에서 적은 출력(1W)을 얻어 제한된 지역에 프로그램을 송신하는 지역밀착형 방송이다. 현재 서울 2곳(마포, 관악),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 전남 나주시, 대구 달서구 성서 등 8개 지역에 존재한다.

○ 가정주부 기자, 할아버지 DJ…


동네 방송국인 소출력 라디오의 제작 주역들. 왼쪽부터 마포FM '마이크 출동'의 김주희 씨(24·대학생), 관악FM '관악 쏙 훔쳐보기'의 진행자 김태현 씨, 작가 이시내 씨(23·프리랜서 작가), 마포FM '톡톡마포' PD 송병희 씨(28·대학원생), 관악FM '신나는 관악세상' 기자 김미화 씨. 이들은 "지역민의 관심사를 한동네 사람인 우리가 얘기하기 때문에 청취자들의 관심이 높다"며 "주민들에게 방송이 알려질수록 더 많은 '동네 방송인' 동료들이 생길 것"이라고 말한다. 김윤종 기자

10일 본방송을 시작한 서울의 관악FM(FM 100.3MHz)과 지난달 말 개국한 마포FM(FM 100.7MHz). 두 곳 모두 20평 정도의 작은 사무실을 방송국으로 쓴다.

상근자는 두 곳 모두 3명 내외. 프로그램 기획, 취재, 방송, 행정까지 모든 업무는 지역 주민들의 자원봉사로 이뤄진다. 그러다보니 직업군, 연령층도 다양하다. 20대 대학생부터 30, 40대 가정주부, 70대 노인들과 정보기술(IT)컨설턴트, 사업가, 의사까지…. 방송국에 자원봉사 신청을 하면 상근자로부터 제작, 장비 운영, 발성 등 방송 전반에 관해 2∼4주간 교육을 받고 희망 현장에 투입된다

‘동네 방송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소출력 라디오 방송은 소(小)라는 말 그대로 거대 미디어가 다루지 않는 작은 우리 동네 이야기와 사회적 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루려 노력한다”고 말한다.

초등학생 자녀 둘을 둔 주부 김미화(38·관악구 신림동) 씨는 관악FM의 동네 기자로 활동하며 관악구 신림동 미림여고 앞길 경사로에 사고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 미끄럼 방지 시설 설치가 필요하다는 여론을 이끌어냈다. 김 씨는 “급여는커녕 오히려 돈을 쓰고 다니지만 지역의 문제점을 알리고 이를 개선하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마포FM의 ‘톡톡 마포! 마이크 출동’은 최근 탐사보도를 했다. 신촌과 홍익대 인근 입시형 미술학원의 수강료가 설비나 강사진과 관계없이 모두 비슷한 가격이란 것을 포착해 학원 사이의 담합의혹을 제기한 것.

○ ‘소수자’까지 아우르는 대안매체로

동네 방송은 지역 이야기뿐만 아니라 대중 매체에서 외면당하는 소수자들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마포FM은 ‘노인들에 의한, 노인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인 ‘아름다운 인생’을 준비 중이다. 기획, 제작을 모두 지역에 사는 60, 70대 노인들이 맡았다.

DJ 홍성기(68·마포구 염리동) 씨는 “노인 소외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매체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노인들의 건강, 복지, 일자리 등 현실적 고민을 다룰 예정”이라고 말했다. 관악FM ‘관악 쏙 훔쳐보기’의 진행자 김태현(37·관악구 신림동·IT컨설턴트) 씨는 신림동 난곡지역의 한국 이주자 교육센터를 찾아 자신의 동네에 사는 베트남, 필리핀 이주 노동자들의 한국생활과 고민을 전했다. 레즈비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L양장점(마포FM)’처럼 성 소수자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미디어 연구단체인 영상 미디어센터의 조동원 정책연구실장은 “기술적으로는 ‘올드’하지만 사회 문화적으로는 ‘새로운’ 매체가 소출력 라디오 방송”이라며 “다원화된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관심을 드러내는 제3의 매체 모델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출력 라디오 방송:

기존 FM라디오 주파수 중 출력 1W를 이용해 반경 2km 정도에 프로그램을 송출한다. 수신자는 기존 라디오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주로 지역 단위로 이용돼 ‘동네 방송’으로 불리지만 놀이공원, 축구경기장 등에서 이용될 때는 ‘미니FM’으로 불린다. 2002년 월드컵 경기 때 축구장 내 안내방송을 위해 ‘미니FM’을 시행하려 했지만 불발에 그쳤고 같은 해 11월 전파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소출력 방송국(1W 이하, 반경 약 1km) 제도가 도입됐다. 현행 전파법이 소출력 라디오의 출력을 1W 이하로 제한하고 있어 아파트 등 고층 건물이 많은 우리나라 여건상 실질적으로 방송이 안 들리는 경우가 많다는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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