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던 궁궐에서 일곱 살 난 왕세자가 실종된다. 당연히 궁궐은 발칵 뒤집힌다. 대체 왕세자는 왜, 어디로, 어떻게 사라진 걸까?
11일 막을 올린 ‘왕세자 실종사건’은 궁궐에서 어린 왕세자가 사라진 후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 연극. 시간적 배경은 ‘실종 후 3시간 동안’으로 설정됐으나 실제로는 실종사건 이전의 과거와 현재를 숨 가쁘게 넘나든다. 왕세자의 실종을 계기로 왕과 중전, 나인, 내관, 상궁 등 등장인물들의 숨겨진 관계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극이 전개되며 등장인물들의 과거 행동들이 하나씩 소개된다. 왕과 중전, 왕과 나인, 나인과 내관, 상궁과 내관 등의 관계들이 마치 양파 껍질처럼 한 꺼풀씩 벗겨지는 구조다. 사뭇 흥미진진한 추리 소설을 보는 것 같은 재미가 쏠쏠하다.
복잡하게 얽힌 이들의 관계를 하나씩 따라가며 ‘과거의 재구성’에 몰두하다 보면 실종된 왕세자에 대한 관심은 어느새 저 멀리 가 있다. 실제로 제목은 ‘왕세자 실종 사건’이지만 정작 왕세자는 연극 내내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극이 끝날 무렵에서야 관객들은 새삼 엉뚱하게 흘러가 버린 연극의 결말과 이 연극에서 줄곧 왕세자가 빠져 있음을 깨닫는다. 어? 왕세자 얘기는 어떻게 된 거지? 그리고는 다시 궁금해진다. 도대체 왕세자는 왜, 어디로, 어떻게 사라진 거야?
작품이 노리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 서재형 연출은 “등장인물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급급해 ‘왕세자 실종 사건’이라는 가장 중요한 본질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모습을 통해 ‘과연 본질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자신의 첫 연출작이었던 독특한 스타일의 연극 ‘죽도록 달린다’로 동아연극상(‘신개념 연극상’부문)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이름을 알린 신예 서재형 연출의 두 번째 작품이다. ‘죽도록 달린다’의 극본을 썼던 작가 한아름과 또다시 손잡고 만들어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젊은 작가와 연출가를 발굴하기 위한 예술의 전당 ‘자유 젊은 연극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23일까지. 화∼금 오후 7시 반, 토 오후 4시 7시 반, 일 오후 4시. 1만5000∼2만원.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02-580-1300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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