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들을 모두 쫓아버려라!”
패왕이 듣기에 성가신 듯 그런 아녀자들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군사들이 그리로 우르르 달려가 창대로 그들을 몰아냈다. 그때 그들 중에 한 소년이 패왕 앞으로 달려와 소리쳤다.
“대왕, 제가 한마디 물을 것이 있습니다. 대답해주시겠습니까?”
패왕이 돌아보니 이제 겨우 코흘리개를 면한 어린아이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워낙 당찬 데다 눈빛도 아이 같지 않게 번쩍이는 것이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끄는 데가 있었다. 창대로 소년을 몰아내려는 군사를 손짓으로 말리고 물었다.
“너는 누구며 몇 살이냐?”
“저희 아버님은 외황 현령의 문객(門客)으로 지금 저기서 구덩이를 파고 계십니다. 저는 열세 살이라 이렇게 죽음을 면했습니다만 그게 반드시 제가 원하는 바는 아닙니다.”
말하는 품이 열세 살 난 아이 같지 않게 맹랑했다. 그러나 패왕은 짐짓 험한 표정으로 받았다.
“좋다. 네가 과인에게 물어볼 것이 무엇이냐? 네 나이 열셋이라 하나 허튼 수작을 부리다가는 네 아비와 함께 땅에 묻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소년은 조금도 겁먹은 눈길이 아니었다. 한결 또렷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대왕께서는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장수로 전장을 떠돌면서 한 세상을 마치시겠습니까? 아니면 민심을 거두어 천하를 얻고 가여운 창맹을 위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십니까?”
“어린놈이 그건 왜 묻느냐?”
“만약 대왕께서 민심을 거두어 천하를 얻고 가여운 창맹을 위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신다면 이렇게 해서는 결코 아니 되십니다.”
“그럼 너는 늙은 도적놈에게 빌붙어 감히 과인에게 맞서온 저 벌레 같은 것들을 살려두란 말이냐?”
“대왕.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팽월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힘으로 외황 사람들을 억누르니 사람들은 두려워서 짐짓 항복한 체하고 대왕을 기다려온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 새벽 팽월의 졸개들이 모두 달아나자 바로 성문을 열고 대왕께 항복한 것인데, 이렇게 모두 산 채 땅에 묻으려 하시니, 만약 이 일이 널리 알려지면 앞으로 어느 백성이 대왕을 믿고 의지하려 들겠습니까? 대왕께서 기어이 저들을 죽이신다면 천하는커녕 여기서부터 동쪽으로 팽월이 차지하고 있던 양(梁) 땅의 성 열 개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항복해봤자 산 채 땅에 묻힐 것이니 두려워서 누가 항복하려 들겠습니까?”
전에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알 수 없게도 그날따라 그 소년의 소리가 패왕의 가슴에 와 닿았다. 어쩌면 싸움이 길어지고 정치적이 되면서 패왕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 어떤 이치를 그 소년이 뚜렷하게 만들어준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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