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독립魂 조국품으로…선열 6명 유해 17일 봉환

  • 입력 2005년 10월 15일 03시 04분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독립군 양성소를 설립한 이대위(李大爲) 선생을 포함한 독립 선열 6위의 유해가 17일 한국으로 봉환된다.

이 선생 외에 이번에 유해가 봉환되는 독립 선열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에 가입해 활동을 후원한 최봉윤(崔鳳潤) 선생,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한 강기운(姜基云) 선생, 승대언(承大彦) 승병균(承昞均) 현석칠(玄錫七) 선생 등이다.

국가보훈처는 유해를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묘지의 임시안치소에 안치했다가 18일 대전국립묘지에 안장할 예정이다.

이번 유해 봉환으로 총 340위의 해외 안장 독립유공자 유해 중 102위가 고국에 돌아오게 됐다. 아직 봉환되지 않은 유해 중 소재가 확인된 91위는 현지에서 묘소를 단장해 한민족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번에 유해가 봉환되는 선열들의 공적은 다음과 같다.

▽이대위(1879.6∼1928.6)=평양 태생으로 190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安昌浩) 선생 등과 미주 한인단체의 효시인 친목회를 결성했다. 1921년 3월에는 김규식(金奎植) 선생 등과 구미위원부를 구성해 사무장으로 외교 및 독립 선전활동에 힘썼다.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최봉윤(1914.5∼2005.4)=평북 의주 태생으로 1935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유학 중 일맥회라는 민족주의 그룹에 가입했다. 1941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에 가입해 의용대 활동을 후원했다. 1941년 12월에는 캘리포니아 주 민병대 소속으로 한인국방경위대(일명 맹호군)가 편성되자 이곳에 입대해 대일 항전을 준비했다.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강기운(1897.4∼1944.9)=함북 회령 태생으로 1920년 4월 중국 간도 허룽(和龍)에서 대한국민회에 가입해 경호원으로 활동했다. 1922년 4월 일제에 체포돼 경성복심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돼 옥고를 겪었다. 1933년 2월 7일 석방됐다.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현석칠(1880.1∼1943.9)=평남 용강 태생으로 1919년 3월 만세시위를 모의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한성임시정부 수립운동에 참여했다. 같은 해 4월 23일 서울 시내 만세시위와 함께 임시정부 선포식을 주도하다 일제에 체포됐다. 1935년에는 만주로 건너가 하얼빈(哈爾濱)에서 동아일보 지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정부는 2004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승대언(1874∼1920) 승병균(1893∼1920)=평북 정주 태생으로 1920년 11월 중국 서간도 한족회 자치구역인 지린(吉林) 성에서 자치회원으로 활동하다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함께 순국했다.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추서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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