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기회가 닿을 때마다 고려 불화를 자세히 살피곤 했다. 그런데 살피는 동안 고려 불화에는 여래나 보살에 광배(光背·머리 뒤의 빛 장식)가 있되 금색의 윤곽만 있고 투명하여 전혀 무늬가 없음을 깨닫게 됐다. 부처는 조각이나 회화로 표현할 때 반드시 광배에 불꽃 모양의 영기무늬가 나타난다. 조선시대 불화에는 반드시 광배에 영기무늬로 위대한 인간의 정신력을 마음껏 나타냈던 것이다. 그러면 고려 불화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나타냈을까. 그것을 발견한 것은 작년 일본 규슈(九州)국립대에서 열린 동아시아학 심포지엄 발표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였다. 모든 고려 불화에는 집중적으로 옷에 영기무늬가 나타나 있음을 알게 되었다.
○ 고려 불화의 비밀은 옷무늬에 감춰져 있다
고려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자처했던 나라였으니 고구려의 전통을 전 장르에 걸쳐 부활시켰던 터에 불화라고 그저 지나칠 리는 없었을 것이다. 고려 불화는 특히 여래나 보살의 옷에 고구려 고분 벽화의 영기무늬의 생성 과정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음을 보고 마음속으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고구려의 벽화, 예컨대 우현리 중묘의 벽화에 그려진 구름 모양의 영기무늬는 그 영기 싹의 생성 과정을 명확히 나타내고 있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 그 표현의 원리가 600여 년 만에 되살아났단 말인가.
우리가 연화당초원문(蓮花唐草圓文)이라 불러 왔던 고려 불화의 둥근 원 안의 모든 무늬가 갖가지의 영기무늬임을 확인한 순간은 나에게는 충격적이며 동시에 큰 기쁨이었다. 일본 조라쿠지(長樂寺)의 수월관음도의 투명한 사라의 무늬는 고후쿠고코쿠젠지(廣福護國禪寺) 소장 아미타 8대보살도의 아미타여래 대의(大衣)의 무늬와 똑같다. S자 모양의 영기무늬에서 조금 긴 영기의 싹이 움터 나가는데 이곳저곳에 작은 영기 싹이 움터 나오는가 하면 독립하여 떠돌기도 하는 것이 우현리 중묘 구름 모양 영기무늬의 표현 원리와 똑같지 않은가.
원 안의 그 무늬는 탄력 있게 곡선을 이루며 끝이 말려서 영기의 싹임이 분명하다. 이것이 만일 연화당초무늬라 하면 완전히 연꽃 모양을 취해야 하는데 연꽃이 아니다. 설령 마쓰오지(松尾寺) 소장 고려 불화나 이시우마데라(石馬寺) 소장 고려 불화에 나타난 무늬처럼 연꽃의 모양을 취했다 하더라도 연꽃 줄기의 이곳저곳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며 움터 나오는 영기의 싹을 보면, ‘연꽃 모양의 영기무늬’임을 알 수 있다. 네즈(根津)미술관과 우리나라 호림미술관의 고려 불화 무늬도 위와 같은 원리로 영기무늬를 나타내고 있다.
○ 고구려 벽화에서 고려 불화로 이어진 영기무늬
일본 MOA미술관 소장 아미타삼존내영도(阿彌陀三尊來迎圖)의 무늬도 호림미술관의 무늬와 똑같다. 이렇게 서로 같은 무늬들이 고려 불화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면 몇 가지 영기무늬 모본이 있어 그때그때마다 취향에 따라 선택하여 그린 것 같다. 자, 이제 고려 불화의 여래와 보살의 광배에 왜 영기무늬가 생략됐는지 알 수 있게 됐다. 불상에는 반드시 보관이나 광배에 영기무늬를 나타내거나 천의나 치마를 휘날리게 하여 신령스러운 기운을 표현하기 마련인데, 고려 불화에는 광배나 보관에 현란한 영기무늬가 없으며 천의나 치마는 조용히 아래로 흘러내릴 뿐이다. 조각에 비해 회화가 표현이 자유스러운 만큼 불화에서도 영기무늬 표현이 수월하다. 그렇기 때문에 고려 불화에서는 옷 무늬에 영기무늬를 마음껏 표현하여 가득히 채웠던 것이다. 그 작은 원 안에 있는 무늬는 노자가 말하는 ‘창조적 혼돈의 세계’였다.
강우방 이화여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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