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5학년 딸이 귀고리에 파마… 엄마, 나 ‘어덜키드’ 됐거든!

  • 입력 2005년 10월 17일 03시 10분


《두 자매의 엄마인 김모(40·서울 노원구 월계동) 씨는 얼마 전 초등학교 6학년인 큰딸(12)이 외출했다가 돌아온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가 용돈을 모아 긴 머리에 웨이브 파마를 하고 왔기 때문이다. “몇 번씩 파마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기에 안 된다고 했더니 결국 자기 용돈을 모아서 했다는데 말문이 막히더군요.” ‘멋 부리는 10대’ 하면 중고등학생? 아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열 살만 넘어서면 집집마다 멋 부리려 드는 ‘어린 10대’와 이를 막으려는 부모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진다. 조숙한 여자 아이들은 초등학교 4학년만 되면 얼굴 헤어스타일에 관심을 갖고 멋 내기를 시작한다.》

초등학교 5학년 딸과 1년째 귀 뚫는 일로 승강이를 벌이고 있는 주부 이모(42·서울 강남구 도곡동) 씨는 “친구들이 귀를 뚫고 올 때마다 속상해하는 아이를 보면서 계속 막아야 하는지 고민스럽다”며 “옷 사러 갈 때에도 딸은 노출이 심해도 예뻐 보이는 것을, 나는 학생다운 차림을 요구해 의견 충돌이 잦다”고 말했다.

남자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어야 외모에 눈뜨기 때문에 봐줄 만할 것도 같지만 정작 멋 부리는 아들과 ‘전쟁 중’인 엄마들은 전혀 괜찮지 않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박모(44·서울 송파구 방이동) 씨는 “아들애가 몇 달 전부터 구레나룻을 기르고 삐죽삐죽한 ‘섀기커트’를 하고 다니는데 학생회장답게 솔선수범해 머리를 자르라고 해도 들은 척도 않는다”고 말했다. “무슨 멋인지 교복도 와이셔츠를 바지 위로 꺼내 입고 다닙니다.”

○ 색조 화장 등 멋 부리는 10대 늘어

이렇다 보니 10대들이 이용하는 미용실에서 밤톨 같은 ‘학생머리’는 정리 대상이 되고 있다.

25년간 서울 강남지역에서 미용업을 해 온 이모(47·여) 씨는 “요즘은 열 살만 넘으면 남자애나 여자애나 ‘섀기커트’를 한다”며 “단정한 학생머리를 해 주었다가는 그나마 있던 손님까지 끊기니 아이들이 해 달라는 대로 해 주고 만다”고 말했다.

‘아이답다’기보다 ‘어른처럼’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 같은 어른을 뜻하는 ‘키덜트(kidult)’가 아니라 어른 같은 아이를 뜻하는 ‘어덜키드(adulkid)’라는 신조어가 생길 판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7일 안에 킹카·퀸카 되는 법’ ‘마술처럼 예뻐지는 10kg 날씬 다이어트’ ‘연예인도 부럽지 않은 멋 내기 코드’ 등 멋 내기 책을 섭렵하는 것은 필수 코스. 최근에는 손톱관리에서부터 다이어트, 이성교제 등의 내용으로 프랑스 잡지 기자가 쓴 ‘소녀들의 백과사전’이 단연 인기다.

기초화장품도 ‘10대용’이 자리를 굳혔고 학교 앞 문구점이나 대형 할인매장에서 팔고 있는 어린이용 색조화장품, 저가브랜드인 ‘미샤’나 ‘더페이스샵’ 같은 화장품 전문점 매장도 10대가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다.

어린이와 10대를 위한 저자극 화장품을 표방하고 있는 영국산 ‘미스 몰리’는 매니큐어 하나만도 1만5000원, 풀세트를 구입할 경우 10만 원대에 이르는 고가품이지만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

중학교 1, 3학년 자매를 키우고 있는 주부 강모(43·서울 강남구 대치동) 씨는 “아이들이 어른처럼 기초화장품도 모공 관리가 되는 기능성 화장품을 선호하고 색조 화장품까지 사고 싶어 하는 눈치”라며 “하굣길에 색조 화장 기색이 역력한 딸 또래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칠 때면 우리 아이들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 부모가 나서서 염색시키기도

교육심리학자인 전정재 박사는 ‘힘든 10대, 어떻게 잘 넘길까’라는 저서를 통해 10대의 치장을 △자기 존재의 표현 △어른 모방 △타인의 인정 추구 △성적 매력 중시 △사회인습에 대한 비판 △친구와의 동류의식의 표현이라고 분석한다.

일부 신세대 부모는 자녀 멋 내기에 너무 앞서 가는 바람에 학교 교사들이 규제를 하는 일도 있다.

서울 Y초등학교 교사 김명희 씨는 “저학년 아이들의 경우 가끔 부모가 귀를 뚫은 귀고리, 파마머리나 탈색머리를 하게 해 주의를 주는데 부모가 그냥 두면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김 교사는 이어 “고학년 아이들이 멋 부리기에 너무 신경을 쓰는 이면에는 이성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같은 다른 문제를 내포하는 경우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경아 사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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