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 “나 대학로 소극장 데뷔해”…해넘이 사랑 찡 &핑

  • 입력 2005년 10월 19일 03시 00분


이순재와 성병숙이 60대 부부로 호흡을 맞춘 ‘늙은 부부 이야기’. 사진 제공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
이순재와 성병숙이 60대 부부로 호흡을 맞춘 ‘늙은 부부 이야기’. 사진 제공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
초겨울, 계절을 닮은 따뜻한 사랑 이야기 한편이 찾아온다.

‘청춘보다 아름다운 사랑’을 다룬 2인극 ‘늙은 부부 이야기’. 황혼의 나이에 만나 부부가 된 60대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남녀 주인공 박동만과 이점순 역에는 ‘이순재-성병숙’과 ‘이호성-예수정’이 각각 더블 캐스팅됐다. 이순재(70)가 연기 생활 49년 만에 처음으로 서는 대학로의 소극장 무대다.

○ 첫사랑보다 아름다운 마지막 사랑

17일 저녁 대학로 ‘늙은 부부 이야기’ 연습실. 오후 4시부터 대사 연습만 하던 이순재-성병숙 팀은 6시부터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갔다. 한때 연극 연출도 직접 했기 때문인지 이순재는 소주병에 담긴 소주(물)의 양까지 신경 쓸 만큼 소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챙겼다. 상처(喪妻)한 지 20년이 된 박동만이 자식 집에서 나와 예전에 국밥집을 하던 욕쟁이 할머니 이점순의 집에 하숙을 들어가 ‘작업을 거는’ 장면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이 여사, 내가 고 마늘 찧는 것 좀 도와 드릴까나?”

“됐수. 댁 일이나 보슈.”

“통 모르시는 소리 하시네. 아, 백지장도 둘이 맞들면 낫고 도둑질도 커플로 하면 나은 벱이여. 근데 우리 이 여사는 화를 내도 이쁠까. 환장하겄네.”

‘대발이 아버지’ 이순재가 특유의 끓는 듯한 목소리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능글능글한 ‘동두천 바람둥이 신사’를 연기하자 스태프는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마늘 찧던 이정순의 손을 넙죽 잡으며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박동만. 이정순이 쏘아붙인다.

“아이고, 정치하는 놈들처럼 넉살도 좋아.”

“안 그래도 나의 소싯적 꿈이 국회의원이었는데, 이 여사는 귀신이네, 귀신.”

이어 이순재의 즉흥적인 농담에 연습실은 순간 웃음바다로 변했다.

“국회의원, 뭐, 그거 내가 한번 해보긴 했지만….”

(그는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늙은 부부 이야기’는 소극장용인 데다 2인극인 만큼 두 배우의 ‘호흡’이 절대적. 이순재에게 상대역을 맡은 성병숙(50)에 대해 묻자 “요즘은 (상대역이) 잘 걸려야 박정수 박원숙이고, 만날 여운계 아니면 강부자였는데 최근 들어 만난 가장 젊은 여배우”라는 말로 좌중을 웃겼다.

○ 20,30대들도 종종 눈시울 붉혀

“소극장 연극은 어찌 보면 TV드라마와 비슷해요. 디테일이 중요한 것도 그렇고. 요즘 소극장 연극을 보면 극장 사이즈에 맞지 않게 시끄러운 작품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배우들이 소리만 질러대고…. 좋게 말해서 ‘열연’이지만 솔직히 시끄럽더라고. 이 작품은 딱 소극장에서 보기 좋습니다.”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지만 최근에 본 공연을 물어보니 이순재는 웬만한 소극장 작품은 줄줄이 내용을 꿸 만큼 대학로 나들이가 잦았다.

2003년 초연된 ‘늙은 부부 이야기’는 노년의 페이소스를 담은 작품. ‘재미’에 초점을 맞춘 젊은 층을 겨냥한 가벼운 연극이나 ‘의미’에만 몰두한 진지한 연극이 부담스러웠던 평범한 관객에게 추천할 만하다. 객석의 절반을 차지하는 20, 30대들도 종종 눈시울을 붉히지만, 중년 부부가 함께 보면 가장 좋다.

이 연극은 봄에서 시작해 여름과 가을을 거쳐 겨울에서 끝난다. 외로운 황혼에 찾아온 만남이어서 더 애틋하고 더 살가운 사랑이지만, “정들자 이별”이라는 대사처럼 계절의 끝에서 이별을 맞는 엔딩이 찡하다. 29일∼2006년 1월 1일. 화, 수 8시. 목∼토 4시 8시. 일 3시 6시. 1만5000∼3만 원. 소극장 축제. 02-741-3934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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