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관대첩비를 보면서 국민이 곱씹어 봐야 할 말이 있다. 불교 선가에서 전해오는 ‘즐탁동기((초+ㅐ,줄)啄同機)’라는 말이다. 어미 닭과 알 속의 병아리가 알껍데기를 동시에 쪼아서 깨지는 순간을 뜻하는 이 말은 북관대첩비 반환의 숨은 공로자인 일본의 가키누마 센신(시沼洗心·74) 스님과 한국의 초산(樵山·76) 스님이 첫 만남에서 나눈 선문답이다.
사실 북관대첩비 반환운동은 멀게는 1909년 일본 유학 중이던 조소앙 선생이 이 비에 대한 글을 발표했을 때부터 시작됐다. 1969년 일본에 있던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 이사장이 야스쿠니(靖國)신사에서 비를 발견한 뒤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여러 차례 되찾으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무산됐다.
1997년부터 반환운동을 펼친 센신 스님도 여러 차례의 좌절을 겪고 한국 측 파트너를 찾다가 2000년 초산 스님을 만났다. 독심술을 익힌 센신 스님은 첫 대면에 ‘즐탁동기’ 넉 자를 써서 초산 스님에게 줬다. 초산 스님은 깜짝 놀랐다. 즐탁동기는 초산 스님이 평소 가장 아끼던 화두였기 때문이다.
그 순간 두 사람은 일심동체가 됐다. 센신 스님이 신장수술, 초산 스님은 심장수술을 받는 악조건 속에서 각자 야스쿠니신사를 설득하고,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을 설득했다. 반신반의하던 한국 정부가 움직였고, 묵묵부답이던 일본 정부도 화답하면서 전망이 불투명하던 비의 반환이 이뤄졌다.
반환이 이뤄지던 날 초산 스님은 “평생의 화두를 이뤘으니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고 말했다. 초산 스님이 구해다 주는 산삼을 챙겨 먹으며 버티던 센신 스님도 “이뤄졌으면 그뿐”이라며 말문을 닫았다.
약탈 100주년이라는 절묘한 시기에 맞춰 반환된 북관대첩비는 동북아시아 평화 정착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북관대첩비의 원소재지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장소로 의혹을 받아온 함북 길주다. 그리고 2002년 9월 깜짝 방북외교를 펼쳤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다시 방북외교를 펼칠 수 있는 좋은 소재다. 여러 모로 상징적 의미가 큰 북관대첩비 반환이 평화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도록 그 껍데기를 동시에 쫄 지혜를 기대해본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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