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이 세상 시어머니들에겐 며느리를 괴롭히고 싶은 DNA가 있나 봐.
▽남편=에이, 무슨 말을…. ‘내 아들을 빼앗겼다’는 상실감 때문이겠지.
▽아내=절대 아니지. 이 영화 보면 시어머니가 한탄하잖아. “남자는 섹스만 하면 다 얼뜨기가 돼. 여우(며느리)가 던진 미끼를 아들이 덥석 물고 만 거야”라고. 시어머니들은 아들이 며느리와 잠자리를 하는 순간부터 며느리의 로봇이 된다고 생각해.
▽남편=틀린 말도 아니지. 당신도 여우잖아.
▽아내=어머니도 며느리를 질투하는 게 아니라 괴롭히는 악취미가 있는 것 같아. 얼마 전엔 새벽 6시에 전화해 다짜고짜 “잘 드는 과일칼 새로 산 것 네가 가져갔니?” 하시잖아.
▽남편=혹시 진짜 가져온 거 아니야?
▽아내=내가 미쳤어? 시어머니가 미우면 시집 물건도 다 미워 보이는 거야.
▽남편=그래도 엄마가 두 얼굴은 아니잖아. 뒤끝은 없으시지. 아들 앞에선 착한 척, 단둘이 있을 때만 며느리를 괴롭히는 영화 속 시어머니에 비하면 양반이셔.
▽아내=이 남자가…. 지난 설에 내가 당신보다 시댁에 먼저 도착했잖아. 그때가 오후 3시였나. 어머니가 “배고플 텐데 밥 먹어라”고 하시는 거야. 밥솥에 남은 누룽지 비슷한 찬밥을 긁어 주시면서. 반찬은 달랑 김치하고 김.
▽남편=그건 당신을 생각해서….
▽아내=그러니까 당신이 등신이지. 직장 생활도 그렇게 해? 먹고 싶진 않았지만 ‘생각해서 주시는데’ 하고 꾸역꾸역 다 먹었어. 근데 오후 6시에 저녁 차리고 잡채니 갈비찜이니 몽땅 밥상에 오르니까 어머니가 귓속말로 이러시는 거야. “지금 배 안 고프지? 우리 먹을 동안 남은 호박전 좀 부칠래?” 그러고 나선 당신한테는 “얘 어미가 입맛이 없나보다. 저러니까 몸이 그렇게 약하지. 쯧쯧” 하셨잖아.
▽남편=내 입장도 생각해줘. 매일 엄마한테 삐삐 호출을 받는 영화 속 아들보다 더하다고. 출근하면 아침 9시부터 30분은 엄마가 전화해 며느리 불평을 늘어놓으시지. 10시 반부터 30분 동안은 당신이 시집 식구 흠을 잡지. 점심시간 무렵에는 누나가 올케 흉보는 전화하지. 난 언제 일하지?
▽아내=미안. 앞으로 전화 줄일게. 어머니께도 (전화) 그만 하시라고 말씀드려.
▽남편=그래도 엄마는 영화의 시어머니처럼 명품을 걸치고 며느리 기 죽이진 않으시잖아.
▽아내=한국의 시어머니는 미국하고 달라. 동창회 모임에는 멋지게 입고 나가지만 정작 아들 내외랑 만날 때는 평범한 옷을 입어.
▽남편=뭔 소리야?
▽아내=‘며느리가 나를 이렇게 신경 써주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거지.
▽남편=당신 제정신이야?
▽아내=어머니도 앞뒤가 안 맞아. 며느리한테는 “김장할 때 자발적으로 돕지 않는다”고 불평하시지만 당신(시어머니)의 딸(시누이)은 자기 시댁에 가서 김장한 적 한 번도 없거든.
▽남편=당신이라면 우리 딸 시집가서 고생했으면 좋겠어?
부부는 오전 3시까지 언쟁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남편은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잠자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아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쁜 놈” 하고는 손을 뿌리쳤다. ‘이것도 영화감’이라고 남편은 생각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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