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돌 위 검정 고무신 있다
마루 한쪽 맷돌 확독 있다
뒤뜰 크고 작은 독 있다
외양간 코뚜레한 소 있다
사랑채 흙벽 종다래끼 뒤웅박
키 호돌이 삼태기 있다
뒷간 똥장군 똥바가지 있다
정짓간 쇠솥 있다
조왕신 절구통 절굿공이 있다
헛간 벽 쇠스랑 갱이 갈쿠리 걸려 있다
도리깨 홀태,
족답식 탈곡기 있다
쟁기지게에 얹혀 있다
닭장 닭둥우리 있다
개울 나무다리 놓여 있다
뒷산 서낭당 있다
상엿집 있다
천태산 남고개 너머
더 깊은 골짝
장선리
- 시집 ‘집으로 가는 길’(詩와에세이) 중에서》
‘삼촌, 댓돌이 뭐야? 종다래끼, 뒤웅박이 뭐야? 서낭당, 상엿집이 다 뭐야?’ 얼핏 대답을 하려다 보니, 이게 뭔가? 저 시인, 모조리 없는 것만 골라서 ‘있다’고 적어 놓으셨다. 마당도, 너럭바위도, 확독도, 마루도, 장독도, 외양간도, 코뚜레도, 닭장도 없다. 장선리에 있다는 마흔 개가 넘는 보통명사들을 출석 부르듯 호명하셨는데, 내가 사는 이 도시 한복판엔 단 한 개도 없다. ‘있다’는 모조리 ‘없다’로 환원되고, ‘없다’는 모조리 ‘있다’로 환원되는 저 두 문명의 칼금 사이, 우리에게 진정 있는 것은 무엇이고, 진정 없는 것은 무엇일까.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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