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저자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사랑이란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이유 때문에 남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상황에 놓여도 끝까지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놓지 않는 진실함이란 것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책의 줄거리는 인종 갈등이 팽배했던 1930년대 미국 앨라배마 주에 있는 메이컴이라는 작은 마을의 한 정의로운 백인 변호사가 흑인을 변호하는 내용이다. 흑인은 백인 처녀를 성폭행하려 했다는 혐의로 법정에 섰다.
책의 주인공은 백인 변호사 애티커스이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사람은 그의 어린 딸 스카웃이다. 이 책은 대공황 직후 궁핍한 삶을 살아가던 마을 사람들과 정의로운 아버지 곁에서 겪었던 일을 시종일관 어린 소녀의 시선으로 적어 내려간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애티커스는 참 매력적인 인간형이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법정에서나 밖에서나 한결같아 어쩌면 재미없고 차가운 사람이다. 자식들이 아버지가 흑인을 변호한다고 손가락질받는다며 울먹이자 이렇게 말한다.
‘모든 변호사는 생애 중 가장 중요한 공판이 있다. 아빠에게는 이번이 그렇다. 앞으로 학교에서 너희들이 이 일로 불쾌한 일을 겪게 될 거다. 그때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상관하지 말고 주먹이 아닌 머리로 싸워라.’
책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가슴속에 상처가 있다. 전반부 주요 인물인 청년 아서 래들리는 몇 년간 전혀 바깥출입을 하지 않아 마을 사람들에겐 공포와 두려움, 의혹의 대상이지만 사실 그는 즐거움을 죄악으로 여기는 침례교파 아버지의 종교적인 집착의 희생자였다. 주인공 소녀 스카웃은 평소 그를 괴물로 생각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그가 자신의 생명을 구하는 은인이 되자 ‘남의 입장에 서 보지 않는 이상 결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두보스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늙고 퉁명스러웠던 할머니는 마을의 ‘왕따’였다. 할머니 역시 ‘검둥이’를 변호한다고 아버지 애티커스를 욕한다. 이에 화가 난 스카웃은 할머니네 집 화단을 망쳐 놓고 이 사실을 안 애티커스는 딸에게 한 달간 할머니 곁에서 책을 읽어 주라는 벌을 내린다. 자신을 욕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잘해 주는 이유가 뭐냐는 딸의 질문에 애티커스는 이렇게 말한다. “어린 네가 책을 읽어 줌으로써 할머니는 모든 정신과 육체를 한 곳에 집중해 조금이나마 병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진짜 용기란 총을 드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이 책이 시공을 초월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이처럼, 알고 보면 상처투성이인 인간들이 나누는 사랑 때문이다. 사랑은 대형 파이프로 뿜어내는 순간의 열정이 아니라 모세혈관처럼 몸속 깊이 스며드는 섬세한 배려라는 것을 이 책은 보여 준다. 원제 ‘To Kill a Mockingbird’.
맹정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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