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01>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1월 1일 03시 00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항탁(項卓)이 세 번씩이나 약을 올리며 싸움을 걸자 어지간히 참고 있던 한나라 진채에서도 마침내 움직임이 있었다. 비탈 위에 엮은 목책(木柵)이 열리며 장수 하나가 말을 타고 진문을 나왔다. 갑옷투구나 들고 있는 활이 모두 한나라 것이 아니었다.

“누번(樓煩)이다. 북쪽 되놈 장수다.”

그 장수의 차림과 활을 알아본 초나라 군사들이 그렇게 떠들면서 곧 벌어질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누번 장수가 말을 박차 앞으로 달려 나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들고 있던 활에 화살을 먹여 항탁을 쏘았다. 공들여 겨눈 것 같지도 않고 힘들여 시위를 당긴 것 같지도 않는데, 처절한 외마디 소리와 함께 항탁이 화살 맞은 얼굴을 감싸 안고 말 위에서 떨어졌다. 누번의 말 타고 활을 쏘는(騎射) 솜씨가 실로 놀라웠다.

그걸 본 한나라 진채에서는 기뻐하는 외침이 일었다. 그러나 초나라 진채에서는 놀란 외마디에 이어 탄식과 분노의 함성이 터졌다. 특히 항탁이 벼랑을 내려갈 때부터 줄곧 눈길로 그를 뒤따른 패왕은 항탁이 말에서 떨어지는 걸 보자 그냥 있지 못했다.

“저놈이.”

이를 부드득 갈며 그렇게 외친 패왕은 몸소 말을 몰아 벼랑을 달려 내려갔다. 광무간으로 내려간 패왕이 그 공터에 이르렀을 때는 그 사이 숨을 거둔 항탁에게로 다가간 누번 장수가 막 그 목을 거두려 할 때였다.

“멈춰라! 이놈. 네 무슨 짓을 하려느냐?”

패왕이 말배를 차 앞으로 내달으며 벼락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그 소리에 놀라 돌아본 누번 장수가 다시 화살을 뽑아 시위에 얹고 패왕을 겨냥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전과는 또 다른 쪽으로 어이없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누번 장수가 활과 화살을 내던지고 한군 진채 안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고함 소리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데 다시 시퍼런 불길이 뚝뚝 듣는 듯한 패왕의 두 눈을 마주치자 그 누번 장수는 그야말로 넋이 날고 얼이 모두 흩어져(魂飛魄散) 버렸다. 손에 든 것 다 팽개치고 돌아서 달아나기 바쁜데, 패왕이 한 번 더 벼락같은 외침을 내지르며 그 뒤를 쫓았다.

“이놈, 게 섰거라. 어디로 달아나려 하느냐?”

그러나 누번 장수는 뒤 한번 돌아보는 법 없이 진채 안으로 달아나더니, 솔개에 쫓긴 까투리마냥 군막 한구석에 머리를 처박고 감히 다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때는 한왕 유방도 벼랑 위 진채의 장졸들 사이에 끼어 광무간 아래서 벌어지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누번 장수가 초나라 장수 하나를 죽인 걸 기뻐할 틈도 없이 나타난 또 다른 초나라 장수의 엄청난 기세를 보고 크게 놀랐다.

“저 장수가 누구냐? 어서 누군지 알아 오너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아 얼른 패왕을 알아보지 못한 한왕이 곁에 있는 군사에게 그렇게 시켰다. 오래잖아 그 군사가 돌아와 말했다.

“그가 바로 항왕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더욱 놀란 한왕은 그날 이후 더욱 진채 깊숙이 숨어 패왕과 만나기를 피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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