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드라마의 외주제작사 ‘올리브 나인’에 따르면 회당 제작비는 1억5000만 원을 웃돈다.
전도연 김주혁 김민준 등 주인공 3명의 회당 출연료만 4700만 원.
그러나 SBS에서 받는 제작비는 회당 8000만 원대에 불과하다.
‘올리브 나인’은 드라마 한 회마다 최소 7000만 원이 적자라는 얘기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까?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이 회사의 고대화(41) 대표는 “‘손해 보고 판다’는 장사꾼의 넋두리는 3대 거짓말의 하나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며 웃는다. 국내 드라마 프로덕션 대표로는 드물게 서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SBSi 상무를 지냈다.
이 회사는 SBS ‘그린 로즈’ ‘불량주부’ ‘프라하…’에 이어 내년 4월 방영 예정인 300억 원 규모의 대작 ‘삼한지’로 드라마 콘텐츠 업계의 떠오르는 강자로 주목받고 있다.
○ 내 안에 흥행 공식 있다
숫자에 밝은 그가 꺼내 보이는 손익계산서는 분명하다.
SBS, 인터넷(SBSi), 해외 판권 수출 등 드라마 방영을 통해 확보한 매출이 20억 원이다. 겉으로는 ‘밑지는 장사’를 하면서도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은 수익 구조의 다양화에 있다.
작곡가이자 가수인 유해준이 부른 ‘프라하…’ OST의 ‘단 하나의 사랑’은 최근 컬러링 순위에서 2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컬러링 다운로드와 음반 판매로 13억2000만 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극 초반 재희(전도연)와 상현(김주혁)이 마음의 문을 여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마리오네트는 완구업체와 공동 사업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자세하게 밝히기를 꺼렸지만 액세서리나 인테리어 소품 등 드라마와 관련된 상품 개발, PPL 수입, DVD 판권료 등으로 총 81억 원의 매출에 18억 원의 순수입이 가능하다는 게 고 대표의 주장이다. 전북 부안군의 세트장에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소원의 벽’을 만들어 관광상품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체코 프라하에서 진행된 로케이션 비용과 출연료 비중이 높아 손익 분기점을 맞추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방송사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편성하고, 외주사도 수익을 남기는 윈-윈 게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 블루칩을 찾아라
그가 찾은 ‘방송가의 블루칩’은 작가였다. 두 시간 내에 결말이 나는 영화와 달리 수십 회에 이르는 드라마에서는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가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파리의 연인’의 김은숙 강은정 작가 외에도 ‘허준’ ‘올인’의 최완규, ‘다모’ ‘상도’의 정형수, ‘단팥빵’의 이숙진 씨를 영입했다. 최완규 정형수 씨와 계약한 것은 대형 프로젝트인 MBC ‘삼한지’로 연결됐다.
그는 요즘 작가들과의 다양한 만남을 통해 드라마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숫자로 다져진 공인회계사의 흥행 감각과 작가가 지닌 드라마적 감성의 교류인 셈이다. 매달 새로 출판되는 소설을 요약한 자료와 작가들이 제출한 드라마 개요 30편 정도를 분석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프라하…’도 그의 발 빠른 판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지난해 10월 ‘파리의 연인’으로 ‘대박’을 터뜨린 김은숙 작가의 생일 파티가 열렸다. 김 작가와 신우철 PD 등이 참가한 가운데 노래방으로 2차를 갔다. 노래방 기기의 화면에 로맨틱한 배경 화면이 눈길을 끌었다. 이 장소가 바로 프라하였고, “‘파리의 연인’ 다음에는 ‘프라하의 연인’이 어떠냐”는 농담이 오갔다. 하지만 이 작품은 구체화되면서 ‘프라하…’와 쿠바를 무대로 한 ‘하바나의 연인’ 사이에서 표류했다.
이때 고 대표가 나섰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김 작가를 프라하로 보름간 보낸 것. 마침내 ‘감’이 온다는 김 작가의 말에 반대를 무릅쓰고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체코가 동유럽권이라 제작환경이 좋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타이밍이 중요했다. 너무 늦지 않아 ‘파리의 연인’의 후광을 기대할 수 있었고 드라마 출연을 꺼려 온 전도연이나 김주혁 같은 연기자를 쉽게 캐스팅했다.”(고 대표)
○ 저평가된 스타를 찾아라
과감한 투자도 필요하지만 미래를 염두에 둔 장기적인 포석도 있다.
이 회사의 매니지먼트 부문에는 유재석 김한석 송은이 안정훈 권용운 이아현이 소속돼 있다. 비싼 몸값으로 연기자를 영입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기준을 지키고 있다.
고 대표는 “연기력이 뛰어나고 성장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시장에서는 저평가된 배우를 주로 뽑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류(韓流)에 대한 거품 논쟁에 낙관적인 견해를 보였다.
“문화는 ‘중독’되는 상품이다. 30, 40대는 ‘뿌리’ ‘V’ ‘맥가이버’ 등 많은 외화를 보면서 성장했지만 지금 외화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가요가 팝을 대체한 것처럼 국내 드라마가 외화를 밀어내고 있다. 적어도 동남아 시장에서의 한류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겁니다.”
그는 숫자보다 창조성이 있는 일을 찾아 방송에 뛰어들었지만 시청률이라는 더 알 수 없는 숫자에 매였다고 했다.
“드라마 제작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시청률 30%를 넘으면 할 일은 다 한 것이고, 40% 이상은 하늘이 결정한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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