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04>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1월 4일 03시 05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로구나. 과인은 오중(吳中)에서 몸을 일으킨 뒤 크고 작은 싸움을 일흔 번이나 치렀으되 한 번도 진 적이 없고, 과인을 따르는 강동(江東)의 형제들 또한 싸움터에서 한 번도 지고 물러난 적이 없었다. 이에 천하는 과인에게 무릎을 꿇고 패왕(覇王)으로 받들었으며, 감히 과인에게 맞서던 것들은 아무도 그 목을 지켜내지 못했다. 네가 꾀어낸 경포나 팽월은 지금쯤 사로잡혀 목이 잘렸을 것이고, 제왕(齊王)도 과인을 따르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그런데 너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 버티느냐? 무턱대고 떼를 쓰며 버티기만 하면 지혜로운 것이냐?”

그 같은 패왕의 말을 한바탕 웃음으로 지워버린 한왕 유방이 마침 잘됐다는 듯 목소리를 높여 꾸짖었다.

“이놈 항우야. 네 미련하기가 소 같고 답답하기가 높은 담장과 마주한 것 같다더니, 실로 그렇구나. 과인은 지금 떼를 쓰며 버티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의기가 하나로 뭉쳐 네가 저지른 열 가지 큰 죄를 다스리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니라.”

그 말을 듣자 패왕의 가슴속에 일고 있던 천 길 불길이 눈 코 입으로 한꺼번에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도 한왕은 절벽 저쪽 멀찍이 서 있었고, 궁수들에게도 한왕을 겨냥할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던 것 같아 패왕은 다시 한번 참았다. 말해 주면 귀담아듣겠다는 듯 몇 발 앞으로 다가가며 소리쳐 물었다.

“그 열 가지 죄가 무엇이냐?”

그러자 한왕은 더욱 잘되었다는 듯 자신도 몇 발자국 동(東)광무 쪽으로 다가서며 이쪽저쪽이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외쳤다.

“지난날 나와 너는 함께 회왕(懷王)의 명을 받들어서 먼저 관중(關中)에 들어가 진나라를 평정하는 쪽이 왕이 되기로 하였다. 그런데도 너는 약조를 어기고 나를 파촉(巴蜀)과 한중(漢中)의 왕으로 내쫓았으니 그것이 네 첫 번째 죄이다.

또 너는 함부로 칼을 빼어 경자관군(卿子冠軍) 송의(宋義)를 군막 안에서 목 베었다. 회왕께서 엄연히 송의를 상장군(上將軍)으로 세우고 너를 차장(次將)으로 삼았건만, 너는 사사로운 감정으로 상관을 죽이고 그의 군권(軍權)을 빼앗았으니 그 죄가 두 번째다.

네가 조나라를 구원하러 갔을 때 거록(鉅鹿)을 되찾고 진군을 물리쳤으면 회왕께로 돌아가 그 명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도 너는 멋대로 제후군(諸侯軍)을 위협하여 관중으로 밀고 들어갔으니 그 죄가 세 번째다.

일찍이 회왕께서 이르시기를, 진나라에 들어가더라도 함부로 사람을 해치거나 재물을 빼앗지 말라 하셨다. 그런데 너는 진나라의 궁궐을 불사르고 시황제의 무덤을 파헤쳐 그 재물을 사사로이 차지하였으니 그것이 네 번째 죄이다.

진나라가 천하에 저지른 죄악은 모두가 시황제와 이세 호해(胡亥)의 짓이요, 자영(子영)은 진왕(秦王)이 된 지 겨우 마흔 엿새 만에 우리 회왕께 항복하였다. 그런데 너는 항복한 자영을 까닭 없이 죽였으니 그것이 다섯 번째 죄이다.”

한왕이 그렇게 크고도 낭랑한 목소리로 패왕 항우의 죄악을 늘어놓다가, 잠시 한숨을 돌린 뒤에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어 이어 나갔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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