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책은 나를 움직이고 세상을 바꿔요

  • 입력 2005년 11월 5일 03시 04분


책을 사랑했던 이덕무와 벗들은 ‘백탑’ 아래에서 모임을 갖고 책과 세상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친분을 쌓았다. ‘백탑파’라고 불렸던 이들은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새롭게 바꾸려는 사상가가 된다. 사진 제공 보림
책을 사랑했던 이덕무와 벗들은 ‘백탑’ 아래에서 모임을 갖고 책과 세상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친분을 쌓았다. ‘백탑파’라고 불렸던 이들은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새롭게 바꾸려는 사상가가 된다. 사진 제공 보림
◇책만 보는 바보/안소영 지음·강남미 그림/288쪽·1만2000원/보림(초등 5년생∼성인)

일곱 살 소년은 방 벽에 금을 그어 놓았다. 마당에서 흙장난을 하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금 생각뿐이었다. 몇 번씩 방에 들락날락했다. 해님이 언제 금에 닿을까 해서다. 그때는 소년이 책을 읽기로 정한 시간이다. 해님이 금에 닿자 소년은 한달음에 방으로 들어갔다. 책을 읽게 돼서 아주 기뻤다.

이렇게 책을 사랑한 사람이 있다. 이덕무(李德懋·1741∼1793).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다. 서얼 출신으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박학다식하고 시문에 능해 젊어서부터 이름을 떨쳤다. 방대한 독서량이 그의 힘이었다. 스스로 간서치(看書痴)라고 불렀다.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이다. 젊은 날을 회고해 정리한 자서전 제목도 ‘간서치전(看書痴傳)’이다.

이 책은 ‘간서치전’이 바탕이 됐다. 책 읽고 글 쓰는 것이 직업인 저자가, 200여 년 전 책에 푹 빠져 살았던 이덕무의 이야기에 매료됐다.

독서가 얼마나 기쁜 일인지 어린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책이 얼마나 향기로운 것인지 어른들도 새삼 깨달을 만하다. 저자는 이덕무가 느꼈을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을 헤아리고 섬세하게 표현했다.

온종일 햇살을 따라 상을 옮겨가면서 책을 읽었다는 이덕무. 막히는 구절이 나오면 끙끙대다가 갑자기 뜻을 깨치면 너무 좋아서 미친 사람처럼 웃었단다. 가난한 이덕무에게 책은 마음의 양식뿐 아니라 몸을 지켜 주는 힘이 됐다. 겨울밤 홑이불 한 장으로 추위를 견딜 수 없어 ‘한서(漢書)’ 한 질을 꺼냈다. 책을 이불 위에 늘어놓고 몸을 뉘었다. ‘낡고 초라한 이불은 중국의 역사로 무늬를 넣은 멋진 이불이 되었다.’

거듭되는 흉년에 온 식구가 배를 곯자 이덕무는 ‘맹자(孟子)’ 일곱 권을 돈 200전과 바꿔야 했다. 친구에게 “맹자께서 양식을 갖다 주시더군. 그동안 당신의 글을 수도 없이 읽어주어 고마웠던 모양이네”라면서 쓸쓸하게 웃었다.

이덕무는 정말 책만 보다만 바보였을까? 그의 삶은 독서가 개인을 변화시키고 시대를 움직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는 자신처럼 책을 사랑한 벗들과 어울렸다.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유득공 등 훗날 실학자로 잘 알려진 이들이다. 백탑(원각사지십층석탑) 아래 자주 모여 ‘백탑파’로 알려진 이들은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새롭게 바꾸려는 개혁적인 사상가가 된다. 책은 이들의 고민과 문제의식을 더듬어 짚어 보고, 책에만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 실학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저자는 이런 작업을 통해 조선 후기 실학이 편리함이나 효율성의 추구에서만 비롯되지 않았다는 것,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넉넉하지 못한 조선 백성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려 준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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