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08>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1월 9일 03시 04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아무래도 대왕을 이대로 두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성고(成皐)로 모셔 상처부터 다스려야 할 것 같으니 선생께서 노관과 함께 대왕을 모시고 광무산을 내려가십시오.”

장수들과 더불어 한왕의 군막을 찾아본 번쾌가 그렇게 말했다. 장량이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가 번쾌를 떠보듯 물었다.

“만약에 항왕이 이 일을 알고 전군을 들어 서광무로 밀고 올라오면 어떻게 하시겠소?”

“죽기로 싸운다면 지키는 일이야 무어 그리 어렵겠습니까?”

“항왕이 동광무(東廣武)를 버리고 성고를 에워싸면 그때는 또 어쩌시겠소?”

장량이 다시 번쾌에게 그렇게 물었다. 번쾌가 전혀 걱정 없다는 얼굴로 받았다.

“그쪽이 오히려 더 해볼 만합니다. 내가 서(西)광무에 있는 한나라 군사를 모두 이끌고 내려가 항왕의 뒤를 치고, 성고성에서도 전군을 이끌고 마주쳐 나오면 초나라 군사는 등과 배로 적을 맞는 꼴이라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자 장량도 비로소 안심이 되는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 장군의 계책이 그렇다면 한번 해 봅시다. 오늘밤 내가 태위(太尉·노관) 태복(太僕·하후영)과 더불어 대왕을 모시고 성고로 내려갈 터이니 날랜 군사 500과 말 100필만 갈라 주시오. 삼경이 지나면 서쪽 비탈로 내려가 날이 밝기 전에 성고성 안으로 들어갈 것이오.”

“군사가 너무 적지 않겠습니까?”

번쾌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장량이 평온한 얼굴로 대꾸했다.

“장군이 말한 계책대로 하자면 우리가 데려가는 군사는 500을 넘겨서는 아니 될 것이오. 서광무에 대군을 그대로 남겨 두어야 항왕이 함부로 성고를 치지 못할 것이외다.”

“만약 항왕이 이 일을 알고 한 갈래 크게 군사를 갈라 대왕과 선생을 뒤쫓게 하면 어쩌시겠습니까?”

“해질녘에 우리 대왕께서 건재하심을 항왕이 다시 보았으니, 오늘밤은 방심하고 있을 것이오. 말발굽은 헝겊으로 싸고 군사들에게는 하무(매·枚)를 물려 조용히 빠져나가면 들키지 않고 성고에 이를 수 있소.”

그와 같은 장량의 말을 듣고서야 번쾌도 마음을 놓은 듯했다. 장량이 말한 대로 날랜 군사 500과 말 100필을 골라 산을 내려갈 채비를 시키고, 자신은 남은 장졸들과 함께 서광무를 지키기로 했다.

그날 밤 삼경 무렵 노관과 하후영이 이끄는 한군 500은 아직도 신열에 들떠 있는 한왕을 들것에 얹어 떠메고 서광무를 내려왔다. 서북쪽 비탈을 통해 초나라 군사들에게 들키지 않고 평지로 내려선 한군은 곧 부근 농가에서 수레를 구해 장량과 한왕을 실었다. 하후영이 수레를 몰고 노관이 500군사와 더불어 수레를 호위하며 성고로 내달았다. 오래잖아 동트기 전의 짙은 어둠이 가시고 날이 희끄무레 밝아 왔다.

노관과 하후영이 한왕을 호위해 성고에 이른 것은 늦겨울 아침 해가 동산 위로 솟아오를 무렵이었다. 성고성을 지키던 한나라 장졸들이 놀라 그들을 맞아들였다. 장량과 노관은 먼저 행궁을 정해 한왕을 눕히고 놀란 성안 군민(軍民)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더 용한 민간의 의자(醫者)를 찾아오게 해 한왕을 돌보게 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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