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올해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돼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영화제 측은 선정 이유에 대해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여운이 있는 멜로드라마”라며 “더 많은 삶의 짐을 지고도 군소리 없이 자신의 인생에 충실한 변방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송가다”라고 밝혔다.
경북 예천에 사는 서른여덟 살 노총각인 만택(정재영)과 희철(유준상)은 성격이 영 딴판이나 어려서부터 둘도 없는 친구 사이다. 순박하고 우직한 농부 만택과 유들유들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바람둥이 택시기사 희철. 혼기를 넘긴 ‘죄’로 집에서 갖은 구박을 받던 둘은 결국 거금을 들여 우즈베키스탄으로 짝을 찾아 떠난다. 그곳에서 만택은 야무지고 씩씩한 현지 통역관 라라(수애)의 도움을 받아 선을 본다. 하지만 여자와 눈도 제대로 못 맞추는 숙맥 만택에게 ‘연애농사’가 제대로 풀릴 리가 없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잘 만들어진 대중영화란 점에서 돋보인다. 캐릭터와 드라마가 살아 있다. 배우들의 호연과 짜임새 있는 연출 덕분이다. 바가지 머리에 농촌 총각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15kg이나 몸무게를 불린 정재영,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볼록한 아랫배에 피부까지 까맣게 그을린 유준상은 정말로 시골 청년 같다.
캐릭터와 하나가 된 듯한 두 사람의 코믹하고 유쾌한 연기는 영화의 재미와 설득력을 높이는 데 한몫 한다.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황병국 감독의 발견도 이 영화의 수확이다. 농촌 노총각의 우즈베크 결혼원정기를 다룬 TV 다큐멘터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그는 이번 데뷔작에서 녹록지 않은 이야기 솜씨와 연출력을 보여 준다. 정겨운 시골 풍경과 우즈베키스탄의 이국적인 풍광을 십분 활용하면서 농촌 노총각의 애환을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게 그려내고자 한 시도는 꽤 성공적이다.
‘∼니껴’ ‘∼이로’라고 끝나는 구수한 예천 사투리, 술에 취해 마을회관 마이크가 켜진 줄도 모르고 두 노총각이 ‘18세 순이’를 목청껏 부르다 어머니한테 두들겨 맞는 장면, 라라의 재촉에 못 이겨 발음도 제대로 안 되는 러시아말을 배우느라 고초를 겪는 만택의 이야기는 흐뭇한 웃음을 전해 준다.
여기에 사회적 메시지도 슬쩍 끼어든다. ‘쌀 수입에 마늘까지. 이제는 여자까지 사오라고’ 하는 대사에서는 답답한 우리 농촌 현실을, 라라를 통해 탈북자 문제까지 건드린다.
이 영화의 이미지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그건 바로 ‘정’이다. 활활 불타오르는 뜨거운 정열이 아니라, 온돌 구들장처럼 은근히 달아올라 오랫동안 온기를 유지하는 그런 훈훈한 정 말이다. 영화 속에는 가족, 친구, 남녀 간에 사람 사는 정이 흐른다.
그래서 세상의 주변부에서 사는 이들의 싸한 아픔과 외로움을 그렸음에도 전체적인 색조는 밝고 긍정적이다. 얼마 만일까. 비틀리거나 왜곡되지 않은,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 빚어내는 웃음을 만나는 것이. 지금도 분명 우리 농촌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그들과 만나고 싶다.
23일 개봉. 12세 이상.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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