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여우는 새끼를 다섯 마리 낳았다. 붉은여우 새끼들이 다 그렇듯, 그녀의 새끼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새끼가 한 마리씩 세상에 나올 때마다 어미는 혀로 핥아 깨끗이 닦아 준 다음 젖을 물렸다.”
태어나고, 어미를 의지해 자라난다.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때가 되면 어미를 떠난다. 짝을 맺고 새끼를 낳는다. 또 다른 동물의 한살이가 시작된다.
‘붉은여우, 앰버’는 여우의 한살이 얘기다. 저자 셜리 우즈는 자연의 풍경을 글로 옮기는 데 매진해 온 캐나다 작가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붉은여우 앰버가 세상에 나와서 제 짝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보여 준다.
앰버는 막내다. 새끼 중 암컷은 앰버 하나다. 태어난 지 열흘째 되는 날 눈을 떴고 3주째 되자 조금씩 걷게 됐다. 젖을 떼고 고기 맛을 들였다. 앰버가 좋아하는 놀이는 살금살금 다가가 오빠들을 덮치는 것. 앰버는 이런 놀이를 통해 자연에서 생존하는 법을 익힌다.
자연은 야생동물을 보호하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한다. 앰버는 사냥 방법을 익히다 가시 많은 동물 호저와 맞닥뜨려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하고, 오빠 하나를 독수리에게 잃기도 한다. 새끼들이 혼자 사냥을 나가게 되면서 가족의 유대감은 점점 약해진다. 독립할 때가 된 것이다.
매가 잡아놓은 어치를 빼앗고 포획한 들쥐를 갈까마귀에게 뺏긴다. 외로움을 알게 되면서 짝을 찾아 나선다. 작가는 이렇게 동물의 삶을 담담하게 전달한다. 독수리가 오빠를 채가지만 엄마 여우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앰버가 독립할 때 엄마 여우는 다정히 대하면서도 딸이 곁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묘사는 부드럽고 섬세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어나는 신체 변화의 경이로움, 먹이를 사냥하는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의 안타까움, 적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을 뻔하다 살아나는 순간의 안도감 등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문장마다 붉은여우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새끼들은 종종 실수로 엄마 여우의 배에 난 털을 한 움큼씩 물어뜯곤 하였다. 이런 일이 생기면 새끼들은 젖꼭지를 찾을 때까지 계속해서 코를 들이대고 킁킁거렸다.’
책에는 따옴표가 없다. 동물은 사람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당연한 사실인데, 동물을 의인화한 동화에 익숙한 엄마들에게 낯설고 신선하다. 사람의 눈이 아니라 동물과 자연의 시선으로 그린 이야기다. 북극곰의 일생을 담은 ‘북극곰, 투가’가 함께 나왔고, 코요테와 너구리, 흰발생쥐 얘기가 나올 예정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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