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타계한 10일 저녁 정 씨의 딸인 연극배우 예수정(50) 씨는 빈소가 아닌 대학로의 소극장 무대 위에 있었다.
현재 2인극 ‘늙은 부부 이야기’를 공연 중인 예 씨가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관객과의 약속인 공연을 펑크 낼 수는 없다”며 평소와 다름없이 무대에 올랐던 것.
이 연극을 제작한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의 마승락 대표는 “‘발인 때까지 공연을 쉬자’고 말씀드렸더니 ‘그러면 돌아가신 엄마한테 왜 공연 안하고 여기 와 있느냐고 혼날 것’이라며 예수정 씨가 출연을 강행했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 중 밝은 장면을 연기할 때의 예 씨는 여느 때에 비해 더 경쾌한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 정 씨 역시 폐암 치료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때를 제외하고는 1980년 ‘전원일기’ 첫 방송부터 2002년 종영 때까지 카메라 앞에 섰다. 이 때문에 연극계 인사들은 예 씨를 놓고 “모전여전”이라고 혀를 내두르면서도 “새삼 배우의 숙명을 떠올리게 돼 마음이 짠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모친상을 당하고도 ‘마당놀이’ 공연을 하며 관객을 웃기고 울려야 했던 김성녀 씨는 “아무리 슬프고, 하늘이 두 쪽 나는 일이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대에 올라야 하는 것이 ‘광대’의 숙명”이라고 말했다.
‘늙은 부부 이야기’에서 예 씨가 맡은 ‘이 여사’는 공교롭게도 폐암(으로 추정되는 병)을 앓다가 죽는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빈소를 지키는 대신 무대를 지켜야 했던 딸. 무대 위에서 ‘죽어가면서’ 딸은 과연 무엇을 생각했을까?
이날 예 씨의 공연을 지켜본 극단 관계자들은 “예 씨가 죽음을 앞둔 대목에서 평소보다 훨씬 눈물을 많이 쏟았다”고 말했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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