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의 필독서 50]<23>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 입력 2005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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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정약용이 지은 저서를 밑줄 그으며 외우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학문을 게을리 하지 말라며 아들에게 쓴 편지는 몇 번을 강조해서 역사 선생님이 읽으시곤 했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가 외우기식이 아니라 이처럼 구성과 스토리를 가지고 쓰인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시대별 인물별 단면 단면의 나열이 아닌 전반적인 역사의 흐름과 배경이 한눈에 읽히면서 자연스럽게 역사에 대한 눈이 트이고 기억되는 책 말이다.

유배지에서 실학을 집대성한 조선 후기의 학자 정약용과 열린 시대를 지향했다는 이유로 노비로 전락하거나 고초를 겪고 죽어 간 정약용의 형제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당대의 인물들과 이데올로기가 파란만장하게 펼쳐지는 이 책은 출렁이는 역사의 배에 올라탄 듯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한 편의 역사드라마다.

보태거나 빼는 것도 없이, 엑스트라도 없이 정확한 기록과 사실만을 토대로 200여 년 전 한국사의 첨예한 쟁점들을 이토록 사실적인 인간 드라마로 그려낸 역사학자인 저자에게 먼저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조선 후기의 당쟁과 당파의 분분한 목소리들과 시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뛰어넘으려 했던 천재 학자의 고뇌와 지혜가 내 머릿속에 가득 그려졌다. 정약용이 유배를 갈 때는 내용에도 없는 진눈깨비가 내리는 풍경이 그려졌고,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던 정약용의 셋째형 약종이 참수당하는 내용에서는 가슴 아프기도 했다.

어느 시대에나 의인과 현인이 있었고 그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이 있었다. 당대에 그들은 환영받지 못하고 고난 속에서 살았지만 총체적으로 그들의 정신은 미래 시대에 커다란 산소통 역할을 했다. ‘열린 미래를 지향하다가 억압당한 우리 역사의 모든 사람들에게’라고 시작하는 이 책은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으며 후기 조선 사회를 혁신하려 했던 정약용 형제들, 이복형인 맏형 약현과 둘째형 약전, 셋째형 약종 그리고 넷째인 정약용과 매형 이승훈, 그들의 치열한 삶의 파노라마다.

노론 벽파 세력에 왕권을 위협당하는 정조를 보좌하며 열린 사회를 지향하던 그들은 정조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참담한 가문의 몰락과 함께 기약 없는 유배를 당한다. 당시 뒤떨어진 유교 이념을 강조하며 사회를 폐쇄 체제로 몰고 가며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당파들을 탄압을 통해 제거하기만 했던 집권 노론에 새로운 지식으로 무장한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은 첫 번째 제거 대상이었던 것이다.

16년 유배생활 동안 정약용은 실학을 완성했고 역사, 문학, 철학, 경제, 과학기술 등 학문의 전 분야에 걸쳐 500권이 넘는 방대한 분량을 저술했다. 그는 불의의 시대를 희망으로 극복하는 진정한 지식인의 정신을 남겼고, 정약용과 함께 유배되었던 형 약전은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그 삶을 승화했으며, 약종은 조선 최초의 천주교 교리서를 저술하며 신념의 순교자로 남았다.

역사와 회고는 가을에 어울리고 또 가을만의 것이라고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깊어 가는 가을, 개인만의 역사를 회고하기보다 200년 전 그들이 산 시대를 회고하며 지금의 삶에 절차탁마를 기하길.

권대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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