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뛰어넘은 재회…철기시대 제짝 창 발견

  • 입력 2005년 11월 15일 03시 08분


“딱 들어맞네”200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창과 창 만드는 틀. 전남 화순군에서 출토된 청동과(청동창·왼쪽)와 영암에서 발굴된 국보 231호 청동 용범(청동 거푸집)의 모양과 크기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 제공 국립광주박물관, 숭실대박물관
“딱 들어맞네”
200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창과 창 만드는 틀. 전남 화순군에서 출토된 청동과(청동창·왼쪽)와 영암에서 발굴된 국보 231호 청동 용범(청동 거푸집)의 모양과 크기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 제공 국립광주박물관, 숭실대박물관
2000여 년 만의 극적인 재회.

초기 철기시대인 기원전 3세기∼기원전 1세기에 제작된 청동기가 오랜 기다림 끝에 ‘짝’을 찾았다. 그 주인공은 숭실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231호 청동 용범(鎔范·청동 거푸집·주조틀)과 국립광주박물관이 갖고 있는 전남 화순군 백암리 출토 청동과(靑銅戈·청동창).

용범은 청동과, 청동검 등의 청동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거푸집을 말한다. 넓적한 2개의 돌에 원하는 청동기 모양을 파낸 뒤 이 돌들을 붙이고 청동물을 부어 굳히면 청동기가 완성된다.

국보 231호 용범은 창, 검, 도끼, 낚싯바늘을 만드는 14점의 주조틀로 광복 직후 전남 영암 지역에서 발굴됐다. 그동안 고고학계에서는 이들 용범으로 만든 청동기를 찾아내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런데 최근 전남대박물관의 조진선(趙鎭先·36·고고학) 학예연구원이 2003년 화순군 백암리에서 출토돼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청동과 한 점이 국보 231호 용범에서 나온 것임을 확인한 것이다.

조 연구원은 올해 6월 이 유물을 보고 “바로 이거다”라고 직감했다고 한다.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청동과의 슴베(손잡이에 끼어 고정하는 부분). 일반적인 청동과 슴베의 폭은 3.5cm 정도인데 백암리 청동과의 슴베 폭은 2.8cm에 불과했기 때문. 국보 231호 청동과 용범에 새겨진 슴베의 폭 역시 2.8cm라는 사실이 생각난 것이다.

청동과와 용범의 입체 사진을 맞춰 보았을 때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슴베 양쪽 면의 폭이 조금씩 다른 점, 청동과 날 양쪽 면 혈구(血溝·창을 찔렀을 때 사람이나 동물의 피가 흘러내리도록 만들어 놓은 홈)의 끝부분 모양이 서로 다른 점까지도 일치했다.

차이가 있다면 청동과의 날의 길이가 용범에 새겨진 모양에 비해 1.4cm 짧다는 점. 이에 대해 조 연구원은 “실제로 당시 사람들이 청동과를 사용했기 때문에 닳아 없어진 것으로, 청동과에 그 같은 흔적이 잘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조 연구원은 이런 연구 성과를 담아 ‘한반도 출토 청동 용범’이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학계는 “청동기 연구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숭실대 최병현(崔秉鉉·57·고고학) 교수는 “지금까지는 청동기 유물들이 의례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해석이 많았는데 이번 연구 결과 청동과의 날이 닳아 짧아질 정도로 실생활에 사용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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