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아동 문학의 고전적 작품이 그렇듯이 낭만적인 아동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 저자 주제 마우루 바스콘셀로스의 자전적인 이야기는 유년기가 삶의 결정적 시기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다섯 살 무렵 자신이 어떻게 철들었는가를 회고한 제제는 이야기의 끝에 이르러 ‘사랑 없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중년의 목소리를 낸다. 사랑이 의미 있는 삶의 원천이라는 교훈은 어린 제제의 갖가지 체험의 주요 의미에 해당하며, 구체적으로는 궁핍과 박대로부터 잠시나마 제제를 구해 준 뽀르뚜가와의 우정에서 파생되고 있다.
그러나 제제는 낭만적인 신화에 갇혀 있는 작품들의 소년 소녀와 달리 순수함이라고 정의되는 단조로운 동심의 화신은 아니다. 이야기의 전반부에 나오는 크리스마스 일화를 보자. 제제는 고작 포도주에 적신 빵 한 쪽이 성찬의 전부인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자 가난뱅이 아빠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악마’로 지칭되는 제제의 일면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 잘못을 곧바로 뉘우치고 혼자 구두닦이 통을 짊어지고 마을로 나가 돈벌이를 해서 아빠에게 담배를 선물한다. ‘천사’라고 칭송받는 제제의 일면이다.
제제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경제적으로 빈곤한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의 시련을 생각하게 된다. 아빠가 직업이 없고 엄마가 공장에 나가고 누나들이 살림을 맡고 있는 집에서 제제는 물질적 결핍을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모와 형제에게서 번번이 매를 맞는다. 라임오렌지나무 한 그루를 친구로 삼아 마음을 털어놓거나 하는 행동이 말해 주듯이, 제제가 당하고 있는 고통의 핵심은 가족과 세상으로부터의 고립에 있다. 인상적인 것은 제제가 집에 대해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지어낸 상상의 세계 속에 살며 간절하게 키워가는 사랑에 대한 갈망이다. 그래서 뽀르뚜가 노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이후 제제가 보여 주는 열광은 그들의 우정이 그럴듯하지 않은 데가 다소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감나게 다가온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1970년대 후반 한국어로 처음 번역된 이후 지금도 여러 판본이 나와 있을 만큼 꾸준히 호응을 얻고 있는 작품이다. 악마이자 천사이고 짓궂은 악동이자 조숙한 몽상가인 제제는 사랑스럽다. 가난을 인생에 대한 저주처럼 여기는 사람에게는 훌륭한 교사일지 모르고, 가난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다정한 친구일지 모른다.
황종연 동국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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