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17>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1월 19일 03시 04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 무렵 용저는 고밀성 밖에 진을 치고 크게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대량(大梁)과 산동을 지나오면서 긁어모은 장정과 팽성에서 급히 보낸 군사를 합쳐 10만 가까운 대군에다 성안에는 제왕 전광이 거느리고 있는 3만 우군(友軍)이 더 있었다. 밖으로 큰소리 쳐온 20만 대군에는 절반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한신이 이끈 군사들보다는 곱절이 넘었다.

“한신이 10만 대군을 일컬으나 실제로는 5만을 크게 넘지 못한다. 그나마 한왕의 고향 산동에서 따라간 군사나 근거지인 관중의 장정은 많지 않고, 그 태반은 조나라에서 급하게 긁어모은 잡병들이다. 한 싸움으로 쳐부수어 한신을 죽이고 제나라를 되찾자.”

용저가 그렇게 말하면서 싸움을 서둘렀다. 용저도 초나라에서는 큰 장수라 그에게도 따라다니며 꾀를 짜내고 슬기를 빌려주는 손(객·客)이 있었다. 이른바 막빈(幕賓)이었다. 그 막빈들 가운데 하나가 나서서 싸움을 서두르는 용저를 말렸다.

“장군, 꼭 한신을 이기시려면 싸움을 서두르셔서는 아니 됩니다. 남과 나를 살펴 싸울 때와 싸울 곳을 고르십시오.”

“그게 무슨 말인가?”

자부심과 고집으로는 어느새 작은 항우가 되어 가고 있는 용저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그런 용저의 반문에 움찔하면서도 내친김이라서인지 그 막빈이 간곡하게 말을 이었다.

“한나라 군사들은 멀리서 싸우러 왔으니, 지면 살아 돌아갈 길이 없는 터라 힘을 다해 싸울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과 급히 싸우면 그 날카로운 기세를 당해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나라와 초나라 군사들은 자기 땅이나 자기 나라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싸우니, 져도 달아나 살길이 많습니다. 따라서 조금만 밀려도 창칼을 버리고 흩어져 달아나기 쉽습니다.

차라리 해자를 깊이 파고 성벽을 높여 지키면서 제왕(齊王)을 시켜 한신에게 잃어버린 성들을 되거두어들이게 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제왕이 믿는 신하들을 사자로 보내 자신이 건재함을 믿게 하고 또 초나라 대군이 이미 구원을 왔다는 것을 알려주면, 한군에게 떨어진 성안의 군민들은 틀림없이 한나라를 버리고 제왕에게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한편 한나라 군사들은 2000리나 떨어진 제나라 땅에 나그네로 와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제나라 성들이 모두 등을 돌리게 되면 그런 형세 아래서는 한군은 먹을 것조차 얻을 수가 없게 됩니다. 이는 곧 싸우지 않고도 한신의 군사를 이길 수 있는 길을 얻게 되는 셈이니, 장군께서는 부디 깊이 헤아려 보십시오.”

그러자 용저가 혼자 너그러운 척 껄껄 웃고 나서 말했다.

“한신의 사람됨은 내가 평소부터 잘 알고 있어 다루기가 쉽다(이여이·易與耳). 그는 빨래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가난한 아낙네(표모·漂母)에게서 밥을 빌어먹었을 만큼 제 몸 하나 먹여 기를 재주가 없고, 불량배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나가야 하는 욕을 보아야 했을 만큼 몇 사람을 당해낼 용기(겸인지용·兼人之勇)도 없으니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거기다가 제나라를 구원하러 왔으면서 싸우지도 않고 항복만 받아낸다면, 그게 무슨 공이 되겠는가? 이제 한신과 싸워서 이기기만 하면 제나라의 절반을 얻을 수 있는데, 여기까지 와서 어찌 뒷짐 지고 구경만 하라고 하는가?”

용저가 그렇게 나오니 헤아림이 밝은 그 막빈도 더는 용저를 말릴 수가 없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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