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여성총리, 한국여성에 특별메시지

  • 입력 2005년 11월 21일 03시 02분


“노력과 절제, 포용력, 인간애…. 그리고 두꺼운 얼굴이죠.”

19일 APEC 정상회의 폐막 직후 부산의 한 호텔 로비에서 만난 헬렌 클라크(사진) 뉴질랜드 총리는 ‘21세기 지도자의 조건’을 묻는 질문에 대뜸 이렇게 대답했다.

‘두꺼운 얼굴…?’

클라크 총리의 이 대답은 어렵게 인터뷰를 성사시켜 잔뜩 긴장하고 있던 기자의 마음을 단번에 풀어주었다. APEC 정상회의에서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초 단위로 움직이는 정상들과의 접촉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겨우 만난 클라크 총리의 보좌진에 ‘한국의 젊은이, 특히 여성들이 가장 만나보고 싶어 하는 국제적 리더 중 한 사람이 클라크 총리’라며 떼를 쓰다시피 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한국 여성들에게,

‘부디 당신의 꿈을 이룰 내재된 능력을 찾기 바랍니다.’

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

2005년 11월 19일

클라크 총리에게는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어 다녔다. 여성 최초의 장관, 여성 최초의 부총리, 여성 최초의 노동당 당수….

클라크 총리는 “지금까지 여성도 뭔가 할 수 있다, 여성도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설득시키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 신념과 치밀한 ‘커리어 플랜’이 필요했다”고 술회했다.

그는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결혼한 뒤에도 남편 성을 따르지 않았다. 일을 위해 아이도 낳지 않았다. 여성을 둘러싼 관습의 벽과 선입관을 헤치고 ‘여성 최초’의 행진을 계속해 온 그에게 ‘두꺼운 얼굴’이 필요했을 것이란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꿈’을 이루고자 하는 한국 여성에게 첫째 “내가 왜 이것을 원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부터 고민하라”고 충고했다. 둘째는 “존경할 만한 인생의 스승을 찾아 역할 모델(role model)로 삼으라”고 했다.

“학창 시절에는 동성(同性) 선생님의 역할이 크고, 사회에 나와서는 존경할 만한 여성 선배가 필요하다. 정치적 영감과 자신감을 심어 준 아일랜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 메리 로빈슨 씨가 나의 역할 모델이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여성 정치인과 정치 지망생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정치는 권력이 아닌 서비스임을 알아야 한다. 여성들 간 인맥 또한 중요하고 무엇보다 여성 지지그룹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방 도시의 시장 직이든 국회 진출이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야 한다.”

“자신의 꿈을 이룰 능력은 자기 안에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뒤 공항으로 떠나는 클라크 총리의 뒷모습에서는 ‘두꺼운 얼굴’보다 ‘따뜻한 얼굴’의 이미지가 느껴졌다.

부산=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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