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사랑·본능·순수…수컷들의 줄타기‘광식이 동생…’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두 형제의 사랑법을 담은 로맨틱 코미디 ‘광식이 동생 광태’. 오른쪽부터 ‘순수남’의 표본으로 나오는 광식 역의 김주혁, 윤경 역의 이요원, 일웅 역의 정경호. 사진 제공 프리비젼

23일 개봉된 ‘광식이 동생 광태’(감독 김현석)는 한 마디로 ‘사랑을 대하는 남자들의 자세’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제목에 나오는 ‘순정남’ 광식이(김주혁)와 ‘바람둥이’ 광태(봉태규)는 친형제다. 영화는 다른 개성을 가진 두 형제의 사랑 방식을 보여 주면서 여자들이 오해하는 남자의 속마음을 살짝 들춰 보인다. 진심과 흑심이 교차하고, 지극히 순수하면서도 무지하게 야만적인 동물이 남자라는 것이다.

극과 극인 광식, 광태 형제에게도 공통점이 있다. 평생 ‘사랑한다’고 말해 본 적이 없다는 것. 한 사람은 너무 순수해서, 또 한 사람은 너무 ‘선수’라서. 이 영화가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는 세상 남자들은 때론 광식이로, 때론 광태로 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일러 주기 때문.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요즘의 황당무계한 로맨틱 코미디보다는 훨씬 현실에 근접한 사랑이야기를 깔끔하게 그려낸다. 뻔하고 뻔한 흥행 공식을 조금씩 비틀어 반전을 시도하고, 곳곳에서 감칠맛 나는 대사와 참신한 에피소드를 살려낸 덕분이다. 15세 이상.

#나, 광식이… “7년 전 짝사랑이 돌아왔는데”

나는 잠실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서른네 살의 사진사다. 7년 전인가, ‘새우깡’이 400원이었던 시절. 난 대학 동아리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나는 복학생, 그녀는 신입생. 모든 남학생의 우상인 윤경(이요원)에게 난 한번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사실 몇 번 시도는 해보려 했지만 이상하게 그녀 앞에만 서면 온몸이 얼어붙는다.

난 여자들이 하는 “고맙다”는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이도 저도 아닌 감정의 상태를 에둘러서 하는 표현이다. 비슷한 말로는 “오빤 좋은 사람이에요”가 있겠다. 이 말은 곧 남자친구감은 아니라는 뜻이다.

대학 시절 내 별명은 ‘연애계의 평화유지군’, 덕분에 수많은 여동생(?)을 두었다. 그런데 윤경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이상하다. 나에게 좋은 감정이 있는 듯한데, 왜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은 딴 남자에게 준 거지. 이젠 7년 짝사랑을 끝내고 꼭 내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나, 광태… “12번 자기 전에 헤어져야지”

남자가 지켜야 할 매직 넘버는 ‘12’야. 요는 12번 자기 전에 헤어져야 ‘쿨’ 하단 얘기지. 그때쯤 남자는 싫증이 나기 시작하고 여자는 집착할 조짐을 보이거든. 이번에 새로 만난 경재(김아중)는 몸매도 쭉쭉빵빵이고 성격도 화끈한데 그래도 12번에서 정리해야지. 그나저나 OECD 국가들은 통산 3번째 만남에서 함께 잔다는데 우리나라 진도는 너무 느린 게 문제라니까.

여자들은 왜 모를까. 남자가 여자를 생각하는 마음은 배꼽 위 마음과 배꼽 아래 마음이 다르다는 걸. 남자는 여자랑 잘 때 목욕탕에서 귀중품 맡겨 놓듯, 속마음은 윗도리 안주머니에 넣어 둔다고. 여자도 마찬가지 아닌가. “내가 몇 번째 남자냐”고 물으면 언제나 “3번째 남자”라고들 하지. 첫 번째란 거짓말(?)은 어차피 안 통할 거고, 3번째 정도면 적당하다는 것이 여자들의 계산이잖아.

근데 요즘 술 퍼먹고 다니느라 기억이 깜박깜박해서 골치야. 가만 생각해 보니까 윤경이란 여자가 형한테 전해 주라는 초콜릿을 딴 놈에게 준 것 같은데 어떡하나. 에라, 모르겠다. 인연이란 운명의 실수나 장난도 포함하는 거라는데, 아니면 아닌 거다. 될 거라면 어떻게든 될 거야.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