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말고도 그녀는 지금껏 ‘분신’들 여럿과 함께 지내왔는데 ‘달려라, 아비’라는 명령조의 제목을 단 첫 단편집(창비 펴냄)에 모두 출연시켰다. 애란 씨는 한국일보 문학상을 올해(제38회) 사상 최연소로 받았다.
2003년 등단한 애란 씨는 올해 ‘문예중앙’ 여름호에 ‘스카이 콩콩’이란 단편을 내놓았다. 문학계에서 ‘근엄하기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김원일 선생’께서 “읽다가 나도 몰래 웃음이 터지더라”고 말하는 바람에 “도대체 뭔데?” 하고 찾아본 사람들이 여럿 생겼다. 스카이 콩콩을 타는 거의 철학자 같은 꼬마가 ‘아빠, 내 맘은요, 내 가슴은요’라며 전기수리점을 하는 아빠한테 ‘언제 고쳐주실 거냐’고 묻고 싶다는 대목이 나온다. 꼬마는 아빠가 ‘전기밥통을 고친 후 고쳐주마’라고 말할 것 같아서 항변을 포기하고 만다. 슬픔과 웃음이 쌍둥이처럼 밴 장면들을 만들어내는 데 작가의 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소설계는 가뭄에 가까운 신인 기갈을 겪고 있다. “참 새롭구나” 하고 말할 만한 신인이 적다는 뜻인데, 애란 씨의 작품들은 ‘뭔가 진짜 산뜻한 게 나오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던져준다. 우선 상상력이 싱싱하다. 타이틀 작품인 ‘달려라, 아비’는 이렇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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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씨앗보다 작은 자궁을 가진 태아였을 때, 나는 내 안의 그 작은 어둠이 무서워 자주 울었다.”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다니는 소년 이야기인 ‘사랑의 인사’에는 네스 호(湖)와 백두산 천지에 출몰한다는 괴물 이야기가 튀어 나온다. 이런 이야기들은 ‘방송대본을 우아하게 쓰면 이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짧은 구어체의 반짝이는 문장 속에 담겼다.
애란 씨는 자기 이야기 하는 걸 좀 쑥스러워하는데, 누구 작품을 많이 읽었냐고 묻자 “말해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것 같아서”라며 말을 삼갔다. “리처드 브라우티건 좋아하지요?”라고 갑자기 넘겨 짚어봤다. “절판된 ‘워터멜론슈가에서’ 같은 작품은 복사해서 읽었다”고 털어놓는다. 반(反)전통, 대중문화, 단문, 코믹이 코드인 미국 작가다.
애란 씨는 “글 쓸 땐 단절된 공간이 필요 없고, 사람들이 빽빽한 도서관에서도 노트북 컴퓨터로 글을 쓰곤 한다”고 했다. 갈수록 특이하다. 그녀의 소설엔 사라져버린 아버지가 자주 나온다. 애란 씨는 “우리 (진짜) 아빤 충남 서산 댁에 잘 계세요” 하고 웃었다. 또 입을 한번 살짝 가리면서. ‘아빠’들이 사라진 그의 소설들에는 그가 정말 아끼는 젊은 분신들이 슬픔을 경쾌 발랄하게 이기며 달려 나간다. 우리 문학계에 창창한 새 멤버들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달려라, 애란!”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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