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북스]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세일즈맨의 탄생’

  • 입력 2005년 11월 26일 03시 01분


◇세일즈맨의 탄생/월터 A 프리드먼 지음·조혜진 옮김/376쪽·1만5000원·말글빛냄

영어회화 카세트테이프 판매왕 자리에 오른 어느 영업사원의 사례다. 도로를 무단횡단하다가 경찰관에게 붙잡혔다. 임기응변으로 “귀하를 급히 만나기 위해 길을 건넜다”고 말했다. 경찰관이 의아해하자 그 사원은 “앞으로 중요한 일을 할 사람으로 보여 꼭 영어회화를 익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둘러댔다. 경찰관은 황당한 생각이 들면서도 테이프 1질을 샀단다. 국내 어느 출판사 사장이 들려 준 이야기다.

이렇듯 유능한 세일즈맨은 남을 설득하는 데 놀라운 재능을 발휘한다. 세일즈맨이라면 흔히 ‘에스키모에게도 냉장고를 파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세일즈맨의 탄생’은 파란만장한 미국 세일즈맨의 역사를 그린 책이다. 경제의 기본은 결국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것이니 세일즈맨의 역사는 경제사나 진배없는 것 아닌가. 흥미진진한 소설 같은 이 책을 읽으면 200년 미국경제사가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1800년대 미국에는 통일된 화폐가 없었다. 한 주(州)에서 다른 주로 물건을 파는 행위는 무역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이 자급자족, 물물교환으로 생활필수품을 구했다. 이런 생활 행태는 행상의 등장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마을에 행상은 가위 단추 피뢰침 책 프라이팬 등 온갖 물건이 든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주민들은 탐나는 물건을 사기 위해 돈을 벌려고 노력했고 이것이 나라 전체로는 경제 성장의 촉진제가 됐다.

보따리장사 수준에서 벗어난 세일즈맨도 등장했다. 가게를 열고 광고로 손님을 끌었다. 이들에게 판매 노하우를 알려 주는 지침서나 잡지 등이 쏟아졌다. 외판원들은 성공 비결을 기록했다가 은퇴 이후 회고록으로 냈다. 이러한 간행물은 훗날 마케팅 이론서의 뼈대가 됐다.

금전등록기 업체인 NCR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자. 존 패터슨 사장은 1884년 종업원 13명으로 창업했다. 그는 수많은 종류의 금전등록기를 개발했고 대리점제 직영제 할부제 신용판매 등 다양한 판매 방법을 고안해 시행했다. 세일즈맨 연수원도 세웠다. 1919년 임직원은 750명으로 늘었으며 27개국에 대리점을 두게 됐다.

NCR 직원이었던 토머스 잡슨은 1914년 CTR란 회사로 옮겼다. 1924년 사장으로 선임된 잡슨은 회사 이름을 IBM으로 바꾸었다. 이 회사가 오늘날 거대 기업이 된 IBM이다.

외판 노하우는 점점 체계화됐다. 1920년대에 하버드대와 위스콘신대에서는 판매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소비자 심리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이란 희곡이 생각나지 않으신지…. 30년간 세일즈맨으로 활동하던 주인공 로만은 나이가 들자 판매 실적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무력감에 빠져 자살한다.

요즘도 영업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은 때때로 로만처럼 실의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시라. 그대들이야말로 질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바로 그 주역이 아닌가.

고승철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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