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바다를 떠다니는 현대인들은 팩트(fact)보다는 견해를 좇는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보다 한 가지 사실을 두고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다. 그렇다고 한 가지 결론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통일보다는 다양성과 차이, 순응보다는 전복과 발칙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포스트모던의 사회에서는 경청보다 주장이 매력이다.
현직 문화부 기자인 저자가 동아닷컴(www.donga.com)에 연재 중인 칼럼 ‘권재현의 한 잔의 선식’에 실렸던 80여 편의 글을 추려 묶은 이 책은 ‘주장하는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 준다. 수많은 텍스트를 그물코 삼아 자신의 생각과 견해라는 망으로 짜내는 열린 글쓰기를 시도하는 점이 신선하다.
한 편의 시, 소설, 영화, 음악에서부터 TV 다큐멘터리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 텍스트들을 종횡무진 오가며 자신만의 독특한 영감과 창의성을 보태 또 다른 텍스트로 재구성하는 그의 글쓰기는 온갖 팩트에 신물 나 있는 현대인들에게 칼럼 제목 그대로 정신의 다이어트를 도와주는 한 잔의 선식이다.
책 제목은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기를 쓴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에 소개된 내용에서 착안한 것이다. 숲에서 곰을 만났을 때 곰을 피하는 방법은? 답은 ‘없다!’이다. 왜냐고? 한마디로 곰의 변덕 때문에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빛깔이 바뀌고 흐름에 따라 질량이 바뀌는 삶의 다층성에 주목하고 있는 저자는 복잡한 인간사를 단 몇 줄의 기사로 표현해야 하는 직업(기자)적 고통이 또 새로운 글쓰기로 향하는 추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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