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이 동아 조선 중앙일보가 2002년에 신문고시를 위반했다며 공정위에 신고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신문사 본사까지 조사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공교롭게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같은 달 29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일부 신문과의) 갈등이나 감정적인 앙금이 없지 않겠지만 이제 그 문제를 좀 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8월 이후 각종 현안에서 정부와 언론이 충돌하면서 공정위는 신문사 본사 조사 가능성을 다시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30일 전격 실시된 동아 조선 중앙일보와 헤럴드경제 등 4개 신문사 본사에 대한 조사도 정권과의 교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친여(親與) 성향 민언련서 신고
공정위는 4개 신문사 본사에 대한 조사가 ‘일상적인 업무일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공정위의 업무 특성상 불공정 거래 신고를 접수하면 조사에 나서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조사가 현 정권에 비판적인 메이저 신문에 집중돼 있는 데다 2년 전(2003년 11월) 접수한 신고를 뒤늦게 서랍에서 꺼냈다는 점에서 배경과 의도가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신문사 본사 조사에 대한 공정위의 태도가 정치권 기류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있어 조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의심받고 있다.
올해 중반 공정위 관계자들은 사석에서 “민언련의 신고 내용이 오래전 것인 데다 신문고시 위반 정도가 심각하지 않아 본사 조사가 반드시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말할 정도로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공정위는 30일 4개 신문사 본사 조사에 착수하면서 “신고를 받은 이상 조사를 지체할 수 없는 데다 서면으로 미리 받은 자료가 정확한지를 가리기 위해선 본사 조사가 필요하다”고 태도를 바꿨다.
또 신고 내용 이외에 2003년부터 최근까지 신문고시 위반 여부를 별도로 추적하는 데 대해서는 메이저 신문에 비판적인 일부 단체의 주장을 토대로 신문시장이 다시 과열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명분을 제시했다.
하지만 공정위가 지난달 16일 발표한 신문시장 실태 파악(중앙리서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문고시에서 규정한 한도를 초과해 경품이나 무가지를 받은 신규 독자 비중이 33.4%로 2003년 1차 조사(63.4%) 때의 절반으로 급감해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
○ 비판언론에 전방위 압박 나서나
공정위의 이번 조사가 정권에 비판적인 신문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김대중(金大中) 정부 때 실시한 일제 조사의 재판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강정구(姜禎求) 교수 불구속 수사’나 ‘정책홍보에 관한 업무처리 기준’ 등을 둘러싸고 정권과 언론의 관계가 악화된 시점에서 조사가 시작돼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청와대 참모진은 최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메이저 신문의 보도에 대한 비판을 연일 쏟아내고 있으며 국정홍보처도 전방위 공세를 하고 있다.
월간조선 최근호에 따르면 조기숙(趙己淑)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나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하는 생각이 조선일보를 어떻게 죽일까 하는 거다’라고 지인에게 말할 정도로 일부 메이저 신문에 대한 정권 핵심부의 시각은 적대적이다.
공정위에 동아 조선 중앙일보를 신고한 민언련은 그동안 메이저 신문을 집중 공격해 온 ‘친여 언론단체’인 데다 민언련 관계자들이 현 정권의 언론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사들과 직·간접적으로 교분을 맺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외국어대 김우룡(金寓龍·언론학) 교수는 “이번 조사는 정권이 행정력을 동원해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로 해석될 개연성이 충분하다”며 “합법을 가장한 언론 길들이기 성격이 짙다”고 지적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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