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와 관계없을 법한 악기 연주자에게도 ‘짧은 혀’는 고민거리다. 관악기는 혀를 자유롭게 뗐다 붙였다 하면서 소리를 내는 ‘텅잉(Tonguing)’기술이 핵심인데 혀가 짧으면 혀의 움직임이 느려 빠른 소리를 낼 때 힘들다는 것. 이 때문에 혀 짧은 연주자 중에는 혀 밑의 힘줄을 끊어 혀를 자유롭게 하는 수술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 아리아를 불러야 하는 성악가에게도 ‘짧은 혀’는 불리한 조건. 이탈리아어에서는 혀를 ‘도르르’ 굴리며 내는 ‘ㄹ’ 발음이 많아서다.
하지만 ‘짧은 혀’ 때문에 가장 괴로운 것은 역시 연극배우다. TV나 영화에서는 여주인공이 애처롭게 ‘실땅님’을 부르거나, 몸짱 남자 스타가 한판 붙자며 ‘옥땅으로 올라와’라고 말해도 인기가 하늘을 찌르지만 연극배우에게 ‘짧은 혀’는 ‘그보다 더 치명적일 순 없는’ 핸디캡이다.
연극연출가 박근형 씨는 “연극배우의 생명은 정확한 발음과 딕션(대사 전달력)인 만큼 혀 짧은 배우들은 아무래도 주요 배역을 맡기 어렵고 셰익스피어 같은 정통 고전극을 연기하기는 더 힘들다”고 말했다(“둑느냐 따느냐, 그거디 문데로다”를 읊조리는 햄릿이란!).
공연 중인 한 뮤지컬의 무대감독 K 씨는 한때 배우였지만 연출가에게서 “혀가 짧으니 연기를 포기하라”는 말을 듣고 고민 끝에 스태프로 전업한 경우다.
‘짧은 혀’는 교정이 가능할까?
삼성서울병원 음성언어치료사 이은경 씨는 “‘혀가 짧다’는 것은 설소대(혀를 위로 들었을 때 보이는 가느다란 힘줄)가 남보다 짧아 혀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설소대 단축증’을 지칭한다”며 “흔히 ‘혀 짧은 소리’라고 말하는 ‘ㅅ’을 ‘ㄷ’으로 발음하는 것은 어릴 때 교정해야지 성인이 되어 고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설소대 수술을 통해 효과를 볼 수 있는 발음은 ‘ㄹ’.
혀가 짧다는 지적을 많이 받는다는 배우 K(33) 씨.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때 했던 연극이 좋아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2년 전부터 다시 대학로에서 연극을 시작한 경우다.
그는 “딕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우의 ‘진심’이라고 믿고 싶다. 배우로서 스스로가 부끄러워 연극을 그만둘 수는 있지만 혀가 짧다는 이유 때문에 연극을 떠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죽느냐 사느냐’면 어떻고, ‘둑느냐 따느냐’면 또 어떠랴. 연극을 향한 그의 ‘열덩’은 매끄러운 혀를 가진 이들의 부족한 ‘열정’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을.
“그의 천부적인 어눌함을 부러워하며/매끄러운 나의 혀를 부끄러워하며/마침내 내 중얼거림 속에서 사랑이 사당이 되었을 때/그는 시, 나는 말이 되고/그는 예술, 나는 현실이 되어….”(윤용선의 ‘혀 짧은 그리움. 아니 그, 디, 움,’ 중에서)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