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의 문화예술위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요즘도 ‘문지 동인’들, 같은 세대 작가들과 매주 목요일 문학과지성사에서 만나 바둑도 두고 세상 이야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가 사장으로 있던 시절 이 출판사엔 “수필집 번역소설 참고서 교재 아동도서를 안 낸다. 자비 출판도 안 한다”는 고집스러운 원칙이 있었다. 그는 “지금 생각해 보면 ‘돈 버는 일은 하지 말자’는 원칙이었다”면서 “동인들이 출판을 정치적 이념적 자기 표현과 동의어로 생각하던 터라 자부심 같은 게 있었다”고 말했다. 이 원칙 중 몇 가지는 1990년대 후반 들어 ‘포스트모던’한 시대의 ‘제약’이 되는 점 때문에 폐기해 버렸다.
그가 창사했던 시절과 비교해 우리 문학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닐까. “계간지 ‘문학과 사회’ 겨울호 특집을 보니, 올해 우리 소설문학 독서가를 외국 소설이 ‘석권했다’는 글이 실렸던데요” 하고 운을 뗐다.
그는 슬쩍 웃더니 “너무 놀랄 것 없다”고 말했다. “1960, 70년대에도 읽히는 소설의 70% 이상이 헤르만 헤세, 앙드레 지드 같은 외국 사람들의 소설이었어요. 한국 소설이 이례적으로 많이 읽히던 1980년대에 열정적인 독서 체험을 시작한 세대에게 올해 세태가 놀라운 것일지 모르지만, 새로운 건 아니라는 거지요. 오히려 우리 작가들을 둘러싼 창작과 독서 환경은 놀랄 만큼 높아졌습니다.”
그는 “8월 29일 문화예술위원장으로 취임하던 무렵에 그간 게을러 못 가던 공연장을 여러 군데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예술 문화가 엄청나게 역동적이고 참신하고 재밌어졌다는 걸 확실하게 느꼈다. 이걸 계속 뒷받침하려면 선택과 집중형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부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안 한다’는 당초의 원칙을 지켜줘야 한다. 그래야 취지대로 우리 위원회의 민간화와 자율화가 살아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화예술위의 지원 가운데 ‘문학 회생 프로그램’의 경우 “독서 시장에서 소화되지 못한 책을 문화예술위가 대신 사주는 ‘가상의 수요 창출’이 과연 ‘문학 회생’이냐”는 비판도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장 실패적인 부문’이라는 말이 있어요. 본격 예술에선 이런 부문이 나오는 게 불가피하다는 건데요. 높은 성취도를 보인다면 버리기가 쉽지 않아요. 이걸 펴내는 부담을 출판사더러 다 짊어지라고 하기 힘든 게 있습니다. 하지만 끈기 있게 지원하다 보면 좋은 작품들이 시장과 만나는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영국 문화예술위원회의 첫 위원장은 경제학자인 존 케인스였다”고 덧붙이며 웃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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