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 최고를 가리자는 뜻에서 나온 이종격투기 대회가 ‘K-1’이다.
K-1은 ‘최배달’로 유명한 최영의가 창시한 극진가라테의 유파인 정도회관(正道會館)의 이시이 가즈요시(石井和義)가 창시한 입식 격투기.
‘프라이드 FC’처럼 메치기 조르기 누르기 관절꺾기 등 누워서 격투를 벌이는 그래플링과 구분된다.
K-1은 민속씨름 출신인 최홍만의 출전으로 한국에서도 인기 상승 중이다. 지난달 서울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선수 못지 않게 주목받는 여성들이 있다.
바로 ‘K-1걸’들. 이들은 “땀 냄새 물씬한 사내들의 싸움터에서 싸움 잘하고 미인을 얻고 싶은 남성들의 ‘마초 로망’을 충족시키는 역할을 한다”(이학수 K-1 미디어팀장)는 평을 듣는다.
정윤희(25) 이현진(23) 최희정(24) 조유(23) 등 네 명의 K-1걸을 만났다.》
○ 눈요깃감이라고요?
정윤희: 그런 면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 음흉한 눈으로 아래위를 훑는 관객들도 있다. 어느 정도 섹시 코드를 활용하지만 우리는 프로다. 많은 경험과 훈련을 거쳐서 이 자리까지 왔다.
이현진: 우리는 ‘레이싱 모델’(걸보단 모델로 불러 달라)을 포함한 홍보 모델 경력이 3∼4년에 이른다. 요즘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부정적인 이들을 만나면 속상하다. 한 명씩 붙잡고 설명할 수도 없고….
최희정: 이후 연예계로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일을 ‘징검다리’로 생각하진 않는다(모두 “맞다”며 박수). 레이싱 모델도 차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으면 무대에 오를 기회조차 없다. 포즈 연구 및 연습도 계속해야 하고. 안주했다간 금방 도태된다.
조 유: 홍보 모델은 자신이 아니라 제품에 대한 호감을 극대화하는 게 목적이다. K-1걸들은 K-1 무대를, 링 위의 파이터들을 돋보이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남성의 마초 로망을 자극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 예뻐 보인다면 기분이 좋긴 하다. 다만 일에 최선을 다해 더 예뻐 보이는 것이었으면 싶다. 인기가 높아지면 야한 화보를 찍는 일부 모델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진 마라.
○ 스토커도 있어요
조: 화려해 보이지만 관두고 싶을 만큼 힘들기도 하다.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끊임없이 연락하는 스토커도 있었다. 경찰에 의뢰해 해결했지만 한밤중에 전화해 ‘만나 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할 땐 소름끼쳤다. 한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정: 아버지가 보수적이라 한동안 공개하지 못했다. 알려진 뒤에는 얼마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는지. 주위에서 “딸이 이상한 일을 한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가 힘들어하시는 것을 봤을 땐 참기 어려웠다.
최: 처음에는 고생도 엄청 했다.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이들도 있어 많이 울었다. 쉽게 생각하고 덤볐다가 관두는 동료나 후배도 많다.
이: 누리꾼들이 가장 무섭다. 팬도 많지만 안티도 얼마나 많은지. 탤런트 이서진이 TV에 나와 여자친구 이름을 말했는데 나와 동명이인이었다. 그 때문에 미니홈피에 난리가 나고, 악성 메일도 엄청 받았다.
정: 다니기도 조심스럽다. 길거리에서 촬영 각도를 희한하게 잡아서 이상하게 나온 사진만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 우리는 프로입니다
최: 좋은 점도 많다. 일정 단계에 오르면 일반 직장인보다 많이 벌기도 하고. 애정 어린 충고를 몇 년째 보내 주는 팬도 있고 아들 때문에 가족 모두가 팬이 됐다며 찾아오는 분도 있다.
정: 한번은 취객들에게 봉변을 당할 뻔했는데 남성 팬이 막아주더라. 어찌나 멋져 보이던지…. 관객과 개인적으로 만나진 않지만 한번 만나 봐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성을 보호해 줄 줄 아는 남자라면 당연히 인간적으로도 끌린다.
이: 자기 일에 열심인 프로로 기억되고 싶다. 미래의 남자 친구가 내 일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겉모습만을 보여 줄 수밖에 없는 직업이지만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커리어 우먼으로 인정받고 싶다.
조: 모델은 평생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중에 패션 공부를 할 것이다. 모델로 성공하는 게 현재의 목표라면, 다음의 꿈은 내가 만든 옷을 내 아이에게 입힐 수 있는 디자이너다.
정: 일본에서는 홍보 모델도 당당한 직업으로 대접받고 있다. 한국도 많이 나아지고 있다. 후배들은 어느 자리에서도 ‘레이싱 모델’ ‘K-1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기 바란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