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는 백인 이주민에 의해 몰락해 가는 인디언의 모습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보여 주는 책입니다. 인디언과 백인 사이에 이루어졌던 협상과 재판들의 기록, 전투에 참여하거나 관여한 군인과 관리들의 자서전, 인디언들의 직간접적인 증언이 책을 이루는 재료죠. 그래서 처음엔 딱딱한 역사책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읽어 보면, 눈보라치는 들판에서 죽어 가는 아기를 끌어안고 우는 인디언 여자, 마지막 협상을 마치고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지으며 나오는 인디언 추장, 황금을 차지하려고 인디언을 속이는 백인들의 생생한 모습을 만나게 되면서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미국 일리노이대 부설 기관 연구원인 저자 디 브라운은 여러 해에 걸쳐 수집한 기록과 인디언들의 구술을 인용해 주관적인 개입을 배제한 채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 이 책으로 기록문학의 한 본보기를 남겼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황야의 모래바람 속에 인디언과 함께 묻힐 뻔한 그들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1971년에 처음 출간된 후 지금까지 17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500만 부 이상 팔렸고, 지금은 인디언 이야기의 고전이 되었죠.
사실 그들의 이름은 ‘인디언’이 아닙니다. 당시 백인들이 발견한 대륙은 인도가 아니니까요. 그들은 ‘인디언’이 아니라 진정한 ‘아메리칸’입니다. 물론 백인 이주민들도 ‘아메리칸’입니다. 원주민들이 그들을 받아들였으니까요.
땅은 넓었고, 원주민들은 욕심이 없었습니다. 들소를 먹고 이용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땅은 소유의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주민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아메리카와 원주민을 만나고 돌아간 백인들은 신대륙을 발견했다며 환호했습니다. 그들의 눈엔 새로운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땅과 비옥한 자원만 보였던 겁니다. 원주민들은 그저 문명이 없는 미개한 종족일 뿐이라고 했죠. 그러나 원주민에겐 자연을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아름답고 순한 문명이 있었고, 낯선 사람들에 대한 의심과 무기가 부족할 뿐이었습니다.
이 책은 아름다운 나라 미국(美國)의 ‘서부개척사’ 이면에는 탐욕과 학살로 이루어진 ‘침략사’가 자리잡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줍니다. 저자는 “역사는 언제나 현재로 스며들어오기 마련이다”라는 말을 남기죠.
한 인디언이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을 전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백인들은 걸핏하면 우리 고유의 생활을 버리고 자기네처럼 살게 만들려고 한다. 농사를 지으라느니 열심히 일하라느니. 인디언들은 그런 걸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가 백인들에게 인디언처럼 살라고 했더라면 그들도 반발했을 것이다. 왜 바꿔 생각하지 못하는가?” -샌티 수우족의 왐디탕카(큰독수리)
송인호 서울 성심여고 교사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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