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고려대 교수 고별강연 “외교서 이분법 태도는 금물”

  • 입력 2005년 12월 9일 02시 59분


한승주 고려대 교수가 정년퇴임을 앞두고 8일 고려대 인촌기념관 대강당에서 고별강연을 했다. 홍진환 기자
한승주 고려대 교수가 정년퇴임을 앞두고 8일 고려대 인촌기념관 대강당에서 고별강연을 했다. 홍진환 기자
“강대국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그 나라의 보호와 협조를 받는 ‘굿 보이(good boy)’도, 강대국과 사사건건 다투고 문제를 일으켜, 강대국이 미운 놈 귀찮아 떡 하나 더 주게끔 해 실속을 차리는 ‘배드 보이(bad boy)’도 되지 맙시다. 자존심이나 자주의식을 꺾지 않으면서 동시에 강대국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스마트 보이(smart boy)’가 되어야 합니다.”

내년 2월 정년퇴직을 앞둔 한승주(韓昇洲) 고려대 교수가 8일 고려대 인촌기념관 대강당에서 고별강연을 갖고 한국 외교에 대해 고언을 던졌다. 한 교수는 28년간 고려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1993∼94년 외무부 장관, 2003∼2005년 주미대사를 지내면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국내의 대표적 외교학자로 평가받는다.

한 교수는 ‘외교란 무엇인가’라는 자신의 학부 강의 마지막 수업을 확대해 열린 ‘통념과 실재’라는 주제의 이날 강연에서 대미관계와 관련해 ‘자주파’와 ‘동맹파’라는 2분법을 넘는 외교 전략으로 ‘스마트 보이 외교’를 강조했다.

한 교수는 특히 “우리는 간혹 ‘할 말은 해야 한다’거나 ‘얼굴을 붉힐 때는 붉혀야 한다’는 말을 듣지만 무엇이 할 말이고 어떠한 때가 얼굴을 붉힐 때인가 하는 것은 철저한 계산에 의해 이뤄져야지 감정에 못 이겨 또는 자신의 심리적 만족을 위해 감당하지 못할 말을 하고 화를 내는 것은 좋은 외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외교에서 감정을 앞세우는 것을 경계했다.

한 교수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나와는 상관없다는 오불관언(吾不關焉)도 안 되고, 동시에 이를 정치화하여 북한 정권 자체에 변화를 가져오는 방편으로 삼는 것이 주목적이 되어서도 안 될 것”이라며 “‘조용한 외교’와 ‘공개적 외교’ 중 상황에 따라 북한 주민의 인권과 안녕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안을 선택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역효과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당위론적으로는 물론 외교적으로도 필요한 일일 수 있다”며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 불참한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수세의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외교는 우리 일상의 대인관계와 비슷하다”면서 좋은 외교를 위한 8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즉 △일방적 승리가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라 △말을 아끼고 상대방의 의견에 귀 기울이라 △상대에 대해 건전한 회의(懷疑)를 가지라 △일이 안 될 경우에 대비한 ‘Plan B’(예비전략)를 세우라 △오만함과 피해의식을 모두 버리라 △실용적 태도를 지니라 △포커할 때 표정과 바둑 둘 때 몇 수를 미리 읽는 전략을 지니라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조화롭게 이끌라 등이다.

이날 강연에는 고려대 학생 외에도 어윤대(魚允大) 고려대 총장과 이홍구(李洪九) 전 총리를 비롯해 학계 정계 언론계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해 700석 규모의 인촌기념관 대강당을 가득 메웠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