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 정년퇴직을 앞둔 한승주(韓昇洲) 고려대 교수가 8일 고려대 인촌기념관 대강당에서 고별강연을 갖고 한국 외교에 대해 고언을 던졌다. 한 교수는 28년간 고려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1993∼94년 외무부 장관, 2003∼2005년 주미대사를 지내면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국내의 대표적 외교학자로 평가받는다.
한 교수는 ‘외교란 무엇인가’라는 자신의 학부 강의 마지막 수업을 확대해 열린 ‘통념과 실재’라는 주제의 이날 강연에서 대미관계와 관련해 ‘자주파’와 ‘동맹파’라는 2분법을 넘는 외교 전략으로 ‘스마트 보이 외교’를 강조했다.
한 교수는 특히 “우리는 간혹 ‘할 말은 해야 한다’거나 ‘얼굴을 붉힐 때는 붉혀야 한다’는 말을 듣지만 무엇이 할 말이고 어떠한 때가 얼굴을 붉힐 때인가 하는 것은 철저한 계산에 의해 이뤄져야지 감정에 못 이겨 또는 자신의 심리적 만족을 위해 감당하지 못할 말을 하고 화를 내는 것은 좋은 외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외교에서 감정을 앞세우는 것을 경계했다.
한 교수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나와는 상관없다는 오불관언(吾不關焉)도 안 되고, 동시에 이를 정치화하여 북한 정권 자체에 변화를 가져오는 방편으로 삼는 것이 주목적이 되어서도 안 될 것”이라며 “‘조용한 외교’와 ‘공개적 외교’ 중 상황에 따라 북한 주민의 인권과 안녕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안을 선택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역효과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당위론적으로는 물론 외교적으로도 필요한 일일 수 있다”며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 불참한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수세의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외교는 우리 일상의 대인관계와 비슷하다”면서 좋은 외교를 위한 8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즉 △일방적 승리가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라 △말을 아끼고 상대방의 의견에 귀 기울이라 △상대에 대해 건전한 회의(懷疑)를 가지라 △일이 안 될 경우에 대비한 ‘Plan B’(예비전략)를 세우라 △오만함과 피해의식을 모두 버리라 △실용적 태도를 지니라 △포커할 때 표정과 바둑 둘 때 몇 수를 미리 읽는 전략을 지니라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조화롭게 이끌라 등이다.
이날 강연에는 고려대 학생 외에도 어윤대(魚允大) 고려대 총장과 이홍구(李洪九) 전 총리를 비롯해 학계 정계 언론계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해 700석 규모의 인촌기념관 대강당을 가득 메웠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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