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36>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2월 12일 02시 55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무섭의 말에 한신이 속으로 쓰게 웃으면서도 겉으로는 여전히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오?”

무섭이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했다.

“여정(呂政)이 사해(四海)를 아우르고 시황제가 되니 그로부터 여러 해 온 천하 사람들이 진나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였소이다. 이에 참다 못한 호걸들이 모두 들고일어나 서로 힘을 합하여 진나라를 치게 되었소. 그리고 진나라가 무너지자 공을 헤아려 땅을 나누고, 그 나누어진 땅에 왕을 봉하여 다스리게 함으로써 사졸로 싸우던 백성들을 쉬게 하였소.

그런데 오래잖아 한왕 유방이 다시 군사를 일으켜 동쪽으로 밀고 나와 남의 나라를 치고 땅을 빼앗기 시작했소이다. 한왕은 먼저 삼진(三秦)을 깨뜨리고 다시 함곡관을 나와 관동의 제후들을 꺾은 뒤 그 군사들을 거두어 동쪽으로 초나라를 공격하고 있소. 천하를 모두 삼키기 전에는 멈추려 하지 않으니, 한왕이 만족할 줄 모름이 이다지도 심하외다.”

무섭은 먼저 그렇게 한왕 유방의 야심을 나무라고 잠깐 한숨을 돌린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거기다가 한왕은 또 그 사람됨이 도무지 믿을 수가 없소이다. 지난날 그의 목숨이 여러 번 패왕의 손아귀에 들었으나, 패왕께서는 늘 그를 가엾게 여겨서 살려주었소. 그런데도 한왕은 위태로운 지경을 벗어나기만 하면 번번이 약조를 어기고 다시 패왕을 공격하였소. 장부로서 그를 가까이 하고 믿을 수 없는 까닭이 그와 같은 실신(失信)과 번복에 있소이다.

지금 제왕이 된 그대(족하·足下)는 스스로 한왕과 교분이 두텁다 여기고, 그를 위하여 재주와 힘을 다하고 있소. 군사를 이끌고 창칼 아래를 내달아 수많은 제후와 왕을 사로잡고 그 땅을 아울렀지만, 끝내는 저버림을 받아 그에게 사로잡히게 될 것이오. 그대가 이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우리 패왕께서 굳건히 버텨 주신 덕분이오. 지금 패왕과 한왕 두 사람의 싸움에서 승리의 저울추가 어디에 놓이게 되는가는 오로지 그대에게 달려 있소. 그대가 오른쪽에 추 하나를 더 얹으면 한왕이 이기고, 왼쪽에 추 하나를 더 얹으면 패왕이 이기게 될 것이오.

하지만 추를 어느 쪽에 얹기에 앞서 그대가 반드시 헤아려 볼 일이 있소. 패왕이 오늘 망하면 한왕은 내일로 그대를 쳐 없앨 것이오. 거기다가 그대는 우리 패왕과 오래된 연고가 있소. 그런데 어째서 한나라를 저버리고 초나라와 화친을 맺어 스스로 살 길을 찾지 않으시는 것이오?”

그 말에 한신이 속을 떠보듯 무섭에게 물었다.

“한왕이 망해 없어진 뒤 패왕이 내게 칼끝을 겨누지 않으리라고는 어떻게 믿을 수 있겠소?”

“그것은 누가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 스스로 확보하는 것이오. 그대에게 초나라와 화친을 맺으라는 것은 그리해서 패왕 아래로 들어가라는 뜻이 아니오. 지금 그대는 이미 천하의 셋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소. 그걸 밑천 삼아 어느 쪽도 편들지 않고 가만히 지키기만 해도 되는 것이오. 그러면 한왕 패왕과 더불어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그중 하나에서 왕 노릇 하는 셈이 되니 그보다 더 그대를 잘 지킬 수 있는 길이 어디 있겠소? 그런데도 지금 이 호기(好機)를 스스로 버리고 한나라를 믿어 초나라를 치려 하다니, 슬기로운 자는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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